영화 ‘보이스’에 나오는 보이스피싱 수법은 다양하다.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현장 작업반장인 서준(변요한)의 아내에게 7000만 원을 송금하게 만들고, 대기업 지원자들에게는 합격했다고 속인 뒤 입사 보증금 명목으로 일인당 3000만 원을 보내게 한다.
이들은 팩트를 정교하게 분석한 뒤 인간의 분노, 희망, 공포를 자극해 치고 들어간다.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사람들이 화가 난 걸 이용해 건강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며 접근하는 식이다. 누구나 혹할 만한 시나리오는 전문 기획팀이 쓴다. 경찰, 은행원, 금융감독원 담당자는 여러 명이 나눠 감쪽같이 연기한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워낙 빠르게 진화해 2016년부터 영화를 기획한 제작진은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해야 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보이스’를 비롯해 군대 내 가혹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드라마 ‘D.P.’, 돈이 없어 벼랑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오징어게임’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은 작품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을 본 이들은 걱정하거나,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고교생 아들을 둔 이는 “앞으로 아이를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아들이 제대한 이는 “군대에서 힘들다고 할 때 좀 더 따뜻하게 챙겨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군대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럽다고 호소한 남성들도 많다.
보이스피싱도 현재진행형이다. 기자의 지인은 최근 백신 접종 문자를 받고 가짜 홈페이지에 접속해 낭패를 볼 뻔했다. 그는 “실제 접종을 앞두고 있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예전에 취재를 위해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많았다. 순식간에 잃어버린 5000만 원, 8000만 원은 그들이 가진 현금 자산 전부였다. 한 할아버지는 “밤에 한숨도 잘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뭣보다 속은 내 탓이 크다”고 자책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 돈을 찾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건지 일말의 기대를 하며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의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 엄마와 딸들…. 수시로 보도되는 기사다.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돈이었다. 첫 게임에서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자 남은 이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살아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다시 게임에 참가한다.
짜임새, 완성도에 대해서는 작품마다 평가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마음 편하게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영화니까’ ‘드라마니까’라고 넘기기에는 많은 장면이 현실과 겹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숨쉬고 있는가. 이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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