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에서 가장 욕심이 깊은 작중 인물을 꼽으라면 파우스트가 아닐까. “하늘로부터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지상에서는 최상의 쾌락을 모조리 맛보겠다는” 사람. 괴테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파우스트’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가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자살하기 직전의 탄식에서 시작한다.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전보다 똑똑해진 것은 하나도 없구나!” 그는 일생을 바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해 왔음에도 자신이 신에 가까워지기는커녕 흙더미를 파헤치는 벌레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절망에 빠진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것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다. “당신들이 죄라느니, 파괴라느니, 요컨대 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제 원래의 본성이랍니다.” 그러나 단순한 악은 아니다. 그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험난한 과정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으름, 자만심, 쾌락의 만족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한마디로 메피스토펠레스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아니요’라는 정신으로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살아온 경직된 삶을 조롱하며 그간 접하지 못했던 세상의 온갖 쾌락을 제공하겠다며 내기를 제안한다. 물론 대가는 있다. 파우스트가 쾌락의 한 순간에 집착할 경우 그의 영혼을 가져가기로 한다. 파우스트도 그 즉시 메피스토펠레스의 종이 되기로 다짐한다. “내가 순간을 향해/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마녀의 영약으로 젊어진 파우스트는 시골 소녀와 풋풋한 사랑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동물적인 쾌락이 가득한 광란의 축제를 즐기고, 중세 궁정에서 정치에 관여해 보고, 넘쳐나는 부귀를 경험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전쟁에 참여하는 등 시공간을 종횡무진 오가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다채로운 경험을 한다. 결국 파우스트는 한 순간을 향해 멈추라고 말한다. 내기에서 지고 만 것일까? 그러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어떤 구원을 암시한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라는 유명한 구절은 착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르는 숱한 과오도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는 너른 진리 안에 있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명망 높은 노학자의 대모험이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어떤 길 위에는 분명히 서 있을 모든 인간의 삶이므로. 그렇기에 ‘파우스트’는 문학사에서 끊이지 않고 샘솟는 영감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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