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두 얼굴의 권순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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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 토론회에서 ‘친형의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있지만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라고만 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최선임인 권순일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 10명은 유죄 5 대 무죄 5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빼고 가장 늦게 의견을 내는 최선임이 무죄 편을 들면서 추가 기울었다.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을 따른다는 관례에 따라 자동적으로 무죄 편에 섰다. 이 지사는 5 대 7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공표의 개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권 대법관은 공표는 활자화의 의미를 가진 ‘퍼블리시(publish)’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토론에서의 발언에는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주장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반한 것이어서 반대의견 대법관들은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토론에서의 발언에는 사실이냐 허위냐의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지가 주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말은 글과 달리 현장에서 공방(攻防)을 통해 부정확성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일도양단 사이에 여지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늘 그렇듯이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정작 권 대법관 자신은 2015년 대법원 소부의 주심을 맡아 박경철 익산시장이 방송 선거토론회에서 상대편 후보가 한 건설사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쓰레기 소각장을 변경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사실을 인정했다. 피의자가 누구냐에 따라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권 씨는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의 판단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2017년 12월 대법관이 겸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됐다. 지난해 대법관 임기가 끝났는데도 관례를 무시하고 선관위원장을 계속 하려다가 빈축을 사고 결국 물러났다.

▷최근에는 대장동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1억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 지사 무죄에 결정적 기여를 한 덕분이 아니냐는 구설에 올라 있다. 이 지사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사실 중에는 선거 공보물 등에 대장동 개발 이익을 과장했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대장동과 이 지사의 관련성을 몰랐다는 권 씨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이재명#권순일#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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