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의 간사장은 당 자금을 관리하고 공천권과 인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넘버 2’다. 이 자리를 5년 넘게 지내며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킹메이커 역할도 했던 역대 최장수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82)가 1일 기시다 후미오 새 총재 체제를 맞아 물러났다. 니카이는 대표적인 친한파, 친중파로 꼽힌다. 주변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진 정냉(政冷)의 시기에 경제 교류를 통한 경열(經熱)을 주도하는 등 내각의 우경화 노선에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국과는 장쩌민 주석 시절부터 최고위층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한국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의형제’의 연을 맺은 사이라고 한다.
▷니카이의 후임 간사장으로는 아마리 아키라 세제조사회장이 기용됐다. 아마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와 함께 자민당의 핵심 ‘3A’로 불리는 아베의 최측근이다. 아마리는 아소가 이끄는 아소파 소속이지만 이번 총재 선거에서 같은 파벌의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 대신 기시다를 지원했다. 특히 아베와 아소 간 소통 채널을 맡아 결선투표에서 기시다를 민다는 막판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정무조사회장에는 총재 선거에서 아베의 공개 지원을 받았던 여성 극우파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발탁됐다. 아소는 부총재에 임명됐다. ‘3A 체제’의 재가동을 알리는 당직 인사가 아닐 수 없다.
▷기시다의 4일 총리 취임과 함께 발표될 내각 인선에서도 3A의 색채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내각의 핵심인 관방장관에는 2차 아베 내각에서 문부과학상을 지낸 마쓰노 히로카즈 중의원이 내정됐다고 한다. 당초엔 아베의 심복이자 우익 강경파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이 떠올랐지만 ‘아베 일색이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그나마 덜한 인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3A, 특히 상왕(上王) 아베의 영향력이 부각되면서 정작 기시다가 이끄는 기시다파에선 내각에 얼마나 기용될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정도다.
▷자민당은 1993년과 2009년 두 차례 정권을 잠시 내준 것을 제외하곤 60년 초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는 정당정치란 없고 파벌정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기시다는 내 편도 없지만 적도 없다는 무색무취의 정치인. 그가 국민적 인기가 높은 고노를 제칠 수 있었던 것은 파벌정치의 결과였다. 총재 당선 직후 일성도 “내 특기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온건 성향의 기시다 선출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에게 드리운 3A의 그림자는 너무 짙어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친한파마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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