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 혁신의 핵심은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처럼 군 인권이 참담하게 무너진 적이 또 있을까. 육해공군을 돌아가며 연이어 성범죄가 벌어졌고, 피해자의 절규를 무시한 결과는 여성 부사관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14년간 육군 법무관을 지낸 이지훈 변호사(44·예비역 소령)는 “밑바닥에 곪아 있는 문제들을 수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에 꽤 오래 있었는데 혹시 당신은 성 차별이나 피해를 겪은 적이 있나.
“법무관이다 보니 신체적으로 당한 적은 없다. 언어적 성희롱을 겪은 적은 있는데… 소령 때 육군본부 헬스장에서 리모컨을 잘못 눌러 옆 사람 트레드밀(러닝머신) TV채널이 돌아갔다. 그랬더니 화를 내며 ‘어디 여자가 감히’라고 하더라. 체육복 차림이라 낮은 계급의 여군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너무 화가 났는데 법무장교인 나 자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참을 만해서 그런 건가.
“문제 삼고 싶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하기 힘들었다. 문제를 삼으려면 일단 알려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저런 걸 물어보는 데 시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이상한 시선을 받을 테고…. 그런 게 싫고 부담스러웠다. 언어적 성희롱도 알려졌을 때 벌어질 상황이 고민스러운데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계급도 나보다 낮은 여군들은 어떨까. 여군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는 군 시설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군을 위한 시설이 많이 열악한가.
“2005년 입대해 유격훈련을 받는데 남자들과 같은 목욕탕을 시차만 두고 썼다. 언제 씻으라고 시간도 안 정해줘서 남자들이 오기 전에 다들 굉장히 허겁지겁 씻고 나왔다.” (1980년대도 아닌데… 항의는 안 했나.) “나도 그렇고 다들 사회 경험도 없이 들어와서 그때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사단급 등 상급부대는 시설이 좀 나았지만 연대나 대대급에는 본관 건물에도 여자 화장실이 따로 없는 곳이 수두룩했다. 야외 시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거 개선하라고 군 양성평등센터가 있는 것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군 화장실 인프라를 개선하라고 한 게 언제인지 아나?” (당신 입대 시절인가?) “2018년이다.” (최근까지도 그런 상태였다는 건가?) “모 부대 유격장에서 벌어진 일인데, 주임원사가 여군 화장실은 대대장이 쓰게 하고, 여군에게는 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쓰도록 했다. 물론 차량 지원은 없었고. 해당 여군이 이 사실을 육군본부 양성평등상담관에게 알렸더니 ‘성 문제가 아니라 도와주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거다. 시설이라는 게 여군에 대한 배려나 생각이 있어야 개선하는 것 아닌가. 군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게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해당 여군은 열악한 부대환경 때문에 급할 때는 탄약통을 요강으로 사용한 뒤 세면대에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폐쇄적인 근무문화 때문에 군 사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2사단 법무실장 할 때인데 우리 사무실에 군 검사, 국선변호장교, 징계장교, 군법원 서기가 다 함께 있었다. 민간으로 치면 검찰과 법원이 함께 있는 셈이다. 군 검사가 사건을 올리면 내가 같이 검토한 뒤 사단장에게 보고한다. 심판관제도에 따라 재판관이 될 일반 장교는 누구를 시키겠다고 결재도 올리고…. 최근에 폐지됐지만 전에는 지휘관 감경권이 있었으니까 판결 결과를 보고하면서 필요하면 감형 의견도 상신한다.”
―사단장이 검사에게 보고받고, 재판관 중 한 명을 지정하고, 감형까지 해줄 수 있으면 견제가 불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늘 재판의 독립성이 문제가 되니까 이번에 감경권과 심판관제도는 폐지했는데, 그 외에도 문제가 많은 게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재판이 필요 없는 징계는 정말 ‘노(NO)답’이다.”
―징계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내리는 것 아닌가.
“언론에 알려져 커지면 세게 내리고 아니면 그냥 묻히고…. 한 번은 모 장군이 징계위원장으로 들어온 적이 있는데 장군이 위원장을 할 정도면 피의자 계급도 높고 큰 사건이다. 그런데 그분 말 한마디로 징계가 ‘휙휙’ 좌우됐다. 이런 징계를 왜 하느냐 이러면서…. 군 감찰도 진짜 문제가 많다.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키울 수도, 줄일 수도 있다.”
―군사경찰이나 법무관들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사건이 들어오면 항상 수사보다 먼저 감찰 조사를 시작하고 지휘관에게 모두 보고한다. 지휘관이 거의 100을 안 상태에서 수사가 시작되는 거지. 지휘관 판단에 따라 감찰 내용을 모두 수사에 넘길 수도 있고, 선별해 넘길 수도 있다. 사건을 줄이고 싶다면 선별해 수사에 넘기고, 수사가 다시 몇 개를 추려서 법무로 보낸다. 수사하는 데는 규율도 많고 권한도 한계가 있지만 감찰은 그런 게 없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니 수사기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이미 갖게 되고, 그게 그대로 지휘관에게 보고된다. 체계상으로는 법무가 뭘 결정하는 위치 같지만 사실은 법무가 가장 조금 안다.”
―군 내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여성 지휘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글쎄… 남성 중심 조직에서 상위 직급에 올라간 여성 중에는 오히려 더 남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군 대령이 유부남 소령과 미혼 여성 대위의 불륜 사건 징계위원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분이 징계위에서 여군 대위에게 뭐라고 했냐면 방문을 왜 열어줬냐는 거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분이 위촉된 이유가 징계위원이 다 남성이라 여성의 시각에서 들어보라는 취지였다. 여군 대령이 그러니까 남자 위원들도 자유롭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징계위 결정은 남자는 정직, 여자는 해임이었다.” (헐….) “여성이 국방부에 항고해서 최종적으로는 정직으로 내려왔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런 말이 징계위 속기록에 적히면 곤란할 텐데.) “징계위 속기록은 취지만 적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기록하지는 않는다. 공개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 안에서 엄청난 인권유린이 벌어진다.” ―지금 군에 2차 가해로 엮이는 게 두려워 피해자의 불법을 묵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최근 모 부대에서 남자 부사관이 여자 부사관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가 전출되는 걸로 끝났는데 이후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 일과시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게 불법인가?) “우리나라 법은 사적 제재를 금지하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도 사적 제재를 금하고 있고, 이를 알았을 때는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피해자는 당연히 보호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사적 제재 권한을 준 건 아니다. 마침 지나가다 그 상황을 본 상사가 중지시키니까 피해자가 ‘내가 피해자인데 이 정도도 못하냐’며 화를 냈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공교롭게 그 직후에 성 관련 2차 가해 실태에 대한 전군 전수조사가 벌어졌다. 올해 성추행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이 워낙 커서 그 후속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자신의 사과 요구를 중지시킨 상사를 2차 가해자로 지목했고, 그 상사는 징계위에 회부돼 서면 경고를 받았다.” (불법을 막았는데 왜 징계를 받나?) “해당 상사가 너무 황당해서 피해자의 사적 제재 행위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그건 불문에 부친다’고 했다. 공군, 해군에서 2명이 죽은 뒤다. 피해자의 잘못을 문제 삼았다가 만에 하나라도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정말 큰일이 나니까 그냥 넘어간 거다. 군 내부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이제는 문제가 있어도 아무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일반 장교야 조직논리 때문에 문제를 지적할 수 없다고 해도 법무관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예전에는 법무관들이 기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진급은 당연히 신경도 안 썼고. 그런데 요즘은 변호사 시장이 어렵다 보니까 웬만하면 안 나가려 하고, 안 나가려면 진급을 해야 한다. 계급 정년이 있으니까. 그러려면 인사고과가 좋아야 하는데 그걸 주는 사람이 지휘관이니 똑같아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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