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시설에서 재탄생한 문화동력[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5일 03시 00분


경기 부천의 복합문화공간 ‘아트벙커B39’의 내부 모습. 쓰레기가 산을 이루던 높이 39m 벙커의 천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구원의 장소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김용관 작가 제공
경기 부천의 복합문화공간 ‘아트벙커B39’의 내부 모습. 쓰레기가 산을 이루던 높이 39m 벙커의 천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구원의 장소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김용관 작가 제공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선 2000년 5월 12일,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 있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지 20년 만에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가 아니라 문화를 공급하는 새로운 발전소로 재탄생한 것이다. 갤러리로 환생한 ‘테이트모던’의 탄생은 발상의 참신함과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 문화적으로도 도시사적으로도 큰 사건이었다. 테이트모던은 이 같은 종류의 수많은 도시재생을 야기한 신호탄 역할을 했다.

원래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며 도시 발전과 더불어 공해 문제로 이전했고, 거대한 발전소 건물은 강변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1994년 ‘런던 밀레니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전소를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이듬해 국제공모를 거쳐 헤르조그와 드뫼롱이라는 스위스의 40대 건축가 팀이 당선됐다.

건축가는 건물 외관을 거의 손대지 않았다. 다만 중앙에 우뚝 솟은 높이 99m의 굴뚝에서 밤에 빛이 나오도록 조명을 설치해 런던에 우뚝 솟은 문화의 상징처럼 만들었다. 그런 건축적인 행위는 과거의 몸에 현재의 정신을 넣는다는 하나의 은유이자 상징으로 보인다. 이후 테이트모던은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됐고, 혹자는 현대 미술의 중심이 런던으로 이동하는 사건이었다고도 평한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에 들어서며 빠른 속도로 시민사회가 재편되고 세계는 발전했지만,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자연은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반성과 위기의식 속에서 산업화 시대의 유산과 부작용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에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등장은 무척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는 낡은 것을 부정하고 파괴한 다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능사였다면, 테이트모던은 이전 것을 부수거나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있다. 경기 부천시 삼정동에는 중동신도시 개발로 건설된 열병합발전소 등 도시 기반시설들이 들어서 있었고 그 안에 쓰레기 소각장도 있었다. 도시가 점점 확장되면서 외곽까지 주거시설들이 들어오자 기존 기반시설들과 마찰이 생긴다. 특히 쓰레기 소각장은 ‘다이옥신 파동’을 겪으며 외곽의 자원순환센터로 기능이 이전되고, 2010년 결국 폐쇄된다. 남아 있는 소각장 건물과 부지의 활용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철거 후 녹지와 체육시설 등 주민 편의시설을 만들자는 의견을 제기했지만, 건물 철거 비용만 70억 원 정도 필요했다. 결국 부천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삼정동 소각장을 문화시설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게 된다.

공모전을 거쳐 설계를 맡은 스튜디오 케이웍스의 김광수 소장은 “소각장이 주는 으스스함과 거대한 설비의 매력”에 빠져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공간의 이름은 ‘아트벙커B39’인데, 숫자 39는 소각장 한가운데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높이 솟아있는 쓰레기 저장고의 높이를 나타낸다.

아트벙커B39는 2018년 문을 열었고, 때마침 그곳을 가보게 됐다. 예전 소각장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살짝 지금의 시간과 태도를 얹으려 한 의도를 입구에서부터 읽을 수 있었다. 당초 사람이 출입하던 곳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버려지는 것들이 들어가던 곳을 이용하는 기분은 꽤 특별했다. 무덤덤하게 콘크리트와 옅은 국방색으로 칠한 철판을 두른 외관 속에 기존 건물의 뼈대를 하얀 실내 마감재로 살짝 덮은 내부가 보였다.

건물 내부를 일부 마감재로 덮었지만 건물 뼈대는 드러냈다. 쓰레기 소각장이던 기존 공간을 수용해 공간의 실존적 가치와 현대인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용관 작가 제공
건물 내부를 일부 마감재로 덮었지만 건물 뼈대는 드러냈다. 쓰레기 소각장이던 기존 공간을 수용해 공간의 실존적 가치와 현대인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용관 작가 제공
안으로 들어가니 과거 거대한 쓰레기가 산을 이루었던 높이 39m의 벙커가 나왔다. 천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에서 마치 어떤 구원의 장소에 들어선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벙커를 바라보는 눈처럼 창들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그 안쪽에는 예전에 이곳을 통제하고 운전하고 처리하던 기계들이 마치 때를 놓쳐 남아 있는 패잔병처럼 먼지를 쓰고 그대로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큰 힘을 갖고 있었다. 무색무취였고, 과거와 미래가 아주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마치 이 시대 우리나라 문화의 현주소와도 같았다. 건축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쓰레기와 같은 음울한 모든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사회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그 쓰레기와 음울한 이면의 일상이 우리의 도시이고 우리의 현실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트벙커B39는 산업화 시대가 남겨 놓고 간 예전의 습관을 수용하고 공간화하는 방식이 테이트모던과 무척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테이트모던은 과거의 기억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박쥐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만나다”라는 슬로건의 초현실주의 미술처럼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현대 미술을 수용했다. 그에 비해 아트벙커B39는 공간의 실존적인 가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현대의 어두운 그늘을 그대로 수용하며 공간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버려지던 공간’의 의미를 확장해 성찰의 장소로 만든 이곳은 재생건축의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산업시설#재탄생#문화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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