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확연히 구분되는 경우가 있다. 결혼식 사진이 그렇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하객은 물론이고 촬영자의 눈은 주인공 신부에게 고정된다. 그렇다 보니 동선과 식순도 신부 위주로 미리 짜인다. 정치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날 행사는 최고 권력자에게 맞춰져 설계되는데 주로 센터 자리는 주인공이, 나머지 참가자는 결혼식 하객처럼 사진의 배경이 된다. 사실 이 구성은 정치 홍보 사진에서 너무 많이 생산됐고 반복되고 있기에 보는 이에게는 식상할뿐더러 오히려 홍보효과를 떨어뜨린다. 대선이 6개월이 안 남은 시점에서 좋은 사진 홍보가 필요한 각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나 정부 행사 기획자들께 ‘잘 찍히는 법’에 대한 팁을 전하고자 한다.
먼저 청와대로 가보자. 지난달 14일 방탄소년단(BTS)은 청와대를 방문해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임명장 수여식’에 참가했다. 수여식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BTS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대통령은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중간에서 일보 앞서 걷는 반면, BTS 멤버들은 검은색 마스크로 깔 맞춤하고 뒤를 따르고 있다. 대통령이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멤버들과 대화하면서 걸어왔다면 어땠을까. 숱한 기념 사진에서 가운데 포지션을 차지했던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과 함께한 사진에서마저 주인공을 차지했다는 게 영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지난 뉴스지만 아프가니스탄 협력자들이 충북 진천에 도착한 날 ‘우산 의전’으로 얼룩져 버린 법무부 브리핑 현장으로 가보겠다. 비가 오는 와중에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는 법무부 브리핑 단상이 차려졌다. 한 기자가 수행비서에게 숙여달라고 요청했고 기마 자세를 유지하던 그는 다리가 저렸는지 3∼4분간 무릎을 꿇게 된다. 이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우산 의전’ 논란이 터졌다. 이에 더해 일부 누리꾼은 “사진을 위해 수행비서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기레기’ 작품”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이 논란은 사진과 영상에 정문이라는 좋은 배경을 담기 위해, 비 오는 와중에 브리핑 장소를 무리하게 외부로 잡은 장소 설계에서 시작됐다. 잘못된 설계로 이날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원치 않게 사진의 주연이 된 수행비서이고 중심이 돼야 할 이슈는 조연으로 전락해 버렸다.
최근 대선 주자들의 유세 사진을 보면 과거 여의도 광장을 꽉 메우고 구름 인파를 배경으로 양손을 높이 들었던 YS-DJ 시대 정치 사진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느낀다. 하루에도 여러 현장을 쉴 새 없이 방문하다 보니 후보자들은 사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상당수 사진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거나, 유명 전통시장에서 ‘떡 먹고 족발 한 점 먹는’ 시식회 참가자 같은 모습, 특정 지지자와 악수를 하면서 시선은 다른 지지자에게 가 있는 등 진정성이 결여된 모습이 담겨 있다. 이번 대선에 여야 후보가 정해지면 감염에 취약한 전통시장 유세는 합의를 통해 서로 하지 않기를 권한다. 유세 차량으로 2차선 도로를 막는 일도 사라지길 바란다. 그렇다고 메타버스 유세를 하란 소리는 아니다. 단지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촬영도 후보자가 직접 셀카봉을 들고 가 상인과 비등한 크기로 찍길 추천한다. 시장에서 사온 재료를 개인 SNS에 올리며 서민 물가에 대해 느낀 점을 써보길 바란다. 소박하지만 효과는 더 클 것이다. 대선 기간 전국 유명시장을 다 방문할 수 없다. 그 대신 집 앞 시장만 꾸준히 가더라도 국민들이 진정성을 알아 줄 것이다.
‘국민’을 외치는 정치인들은 후보자 시절 ‘국민’을 홍보 사진의 배경으로 사용한다. 대통령이 된 후 청와대발 사진을 보면 배경으로 쓰였던 국민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은퇴를 앞둔 독일의 ‘무티(Mutti·엄마)’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사진을 인상적으로 봤다.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 살며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슈퍼에서 장을 봤던 그의 사진에는 주연도 조연도 없다. 설계자가 없으니 ‘쇼통’도 없다. 평범한 배경 속에서 찍힌 한 할머니, 진짜 메르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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