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의 관심과 지지로 사는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가 더 중요하다. 16세기 영국 왕 헨리 8세도 이미지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17세기에 소실됐는데도, 이 초상화는 가장 유명한 영국 군주의 이미지로 여전히 각인돼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한스 홀바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영국의 궁정 화가로 일하며 기념비적인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다. 화이트홀 궁전 내에 있었던 이 그림은 헨리 8세가 아들 에드워드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속 건장한 왕은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한 채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두 발을 벌리고 서서 오른손은 장갑을, 왼손은 허리에 찬 단검 줄을 잡고 있다. 금색 커튼이 달린 화려한 인테리어와 보석과 모피로 장식된 의복은 영국 왕실의 부유함을 과시한다. 넓은 어깨에는 두꺼운 패드를 집어넣어 남성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왕관은 쓰지 않았지만 왕의 권위와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헨리 8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군주였다. 왕비를 다섯 번이나 갈아 치운 여성 편력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림의 모델로 섰을 때는 40대 중반으로 실제로는 비만에다 건강이 나빠져 고통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화가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왕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그린 것이었다.
헨리 8세는 이 그림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다른 화가들에게 모방하도록 명했다. 다양한 버전을 그리게 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도록 했다. 귀족들은 다른 화가들에게 복제화를 주문해 왕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했다. 1698년 화재로 원본이 소실되었어도 이 초상화가 헨리 8세의 강력한 이미지를 대변하는 상징이 된 것도 바로 수많은 복제화 덕분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16세기 왕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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