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비재기업 유니레버는 유니세프와 함께 어린이와 산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손 씻기 캠페인’을 1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서 외부 감염으로 인한 출산 시 사망률이 너무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 주고받는 게 확실하다. 유니세프의 보급용 신생아 키트에 비누를 기부하되 자사 브랜드인 ‘라이프부이’ 상표를 반드시 부착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이 캠페인은 수백만 명의 신생아와 산모를 사망 위험에서 구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유니레버로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비누 사업을 드라마틱하게 살려냈다. 라이프부이는 현재 유니레버에서 13개뿐인 연매출 10억 유로(약 1조3800억 원) 이상 브랜드다.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대표 사례로 유니레버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이런 활동들 덕분이다. 2009∼2018년 유니레버를 이끌었던 파울 폴만 전 회장은 글로벌 공익재단 이매진을 창립해 기업들의 사회적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ESG 전문가인 앤드루 윈스턴 에코스트래티지 대표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9-10월호에 ‘넷 포지티브 선언, 당신 회사 덕에 세상이 좀 더 나아졌나요?’란 글을 기고했다. 윈스턴 대표는 폴만 전 회장과 함께 최근 ‘넷 포지티브’란 책을 펴냈는데, HBR 기고문은 그 핵심을 요약한 글이다.
윈스턴 대표는 ‘자신의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모든 범위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개선하는 기업’을 넷 포지티브 기업이라 정의한다.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이루는 ‘넷 제로’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현실과 한참 멀어 보이더라도 그 정도 목표를 세운 기업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메시지에는 ‘ESG’라는 단어가 상수로 박혀 있고, 이미 조직도 만들었다. 지금 이슈는 ‘Must do’라는 당위성이 아닌 ‘How to do’, 즉 어떻게 할 거냐다.
전략경영 분야에 자원기반관점이라는 이론이 있다. 비르게르 베르네르펠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주창한 뒤 제이 바니 유타대 교수가 정립했다. 기업은 자본, 인력, 역사 등 모든 영역에서 각기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시각이다. 단순화하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ESG 경영도 어느 기업이나 따라야 하는 모범답안은 없다. 기업 자신이 어떤 자원을 갖고 있는지 면밀하게 진단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유니레버의 비누 같은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윈스턴 대표는 27일 본보 주최의 ESG 포럼에 기조강연자로 참여한다. 이른바 ESG 경영의 선두주자들, 그의 용어대로라면 넷 포지티브 기업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지금은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지 소개할 예정이다. 그들이 과연 자신의 차별점을 어떻게 ESG 경영과 연결시켰는지 흥미롭게 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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