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그는 종종 시의 주인공이 되어 왔다. 매미는 결코 바라지 않았을 텐데 많은 시인들이 그를 퍽 좋아했다. 예뻐서는 아니었다. 예로부터 매미는 환생의 상징이거나, 청백리의 상징이었다. 그 소리가 시원하여 더위가 가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괴롭게 읊조리는 이가 마치 매미 같다는 표현도 있었다. 매미가 느긋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즐긴다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오래 기다리고 짧게 허물어지는 인생이어서 주목받았다. 한철의 인생 내내 절절하게 울어서 사랑받았다.
쓰르르 쓰르르, 인생이 쓰다는 듯 우는 매미를 쓰르라미라고 한다. 쓰르라미가 스러지면 귀뚜라미가 온다. 딱 요맘때다. 철 늦은 매미도 생을 거의 다하고 초저녁이면 귀뚜라미들이 자르르 울어댄다. 말하자면 지금은 쓰르라미와 귀뚜라미 사이의 시간이다. 윤제림의 제목도 긴, 이 작품이 생각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아주 무서운 시다. 주인이 방을 비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장 말이다. 누구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이다. 게다가 쫓겨나는 이들은 말미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저 울면서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매미들의 사연을 슬퍼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게다가, 이 매미가 실은 매미만은 아님을 우리는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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