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110번째 건국기념일(10월 10일)을 앞두고 6일 관련 행사가 열린 미국 워싱턴 ‘트윈옥스(Twin Oaks)’ 저택. 대만의 옛 주미대사관저로 쓰였던 이곳에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 기업, 언론계 인사 등 500여 명이 모였다. 팝 음악이 연주되는 무대 옆으로 각종 대만 요리와 디저트가 푸짐했다.
이날 행사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는 시점에 열린 것. 중국이 나흘간 149대의 군용기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키며 고강도 무력시위를 한 직후이기도 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참석자들의 화제는 자연히 이런 움직임에 쏠렸다. “미국과 대만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에서도 결정적인 시점”이라는 전직 백악관 고위 인사의 말에 둘러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박한 위협’으로 불리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인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몰래 들어온 중국 사람들 없느냐”고 누군가가 물었다. 행사를 염탐하려는 중국 쪽 불청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비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행사장에는 사전에 초청장과 QR코드를 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원을 통제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대만대표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혹시나 중국 측이 훼방을 놓을까 신경 쓰는 기색도 읽혔다.
중국 관계자들은 지난해 10월 피지에서 열린 대만 국경절 행사에 난입하려다 이를 막아선 대만 측 관계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였다. 2017년 호주의 한 행사에서는 대만 측 고위 인사의 연설이 시작되자 중국 측 관계자들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음을 키우는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늑대 전사’의 원조로 불리는 친강 미국 주재 중국대사의 광폭 행보도 만만치 않다. 그는 미국을 향해 “입 닥치라(shut up)”는 독설도 거침없이 내뱉지만, 각종 화상 콘퍼런스나 면담을 통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한 워싱턴 주요 인사들과의 스킨십 외교 또한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트위터도 하루에 10여 개씩 올리며 “신냉전의 각본을 우려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은 중국의 주장 전파에 여념이 없다.
공격적인 중국 ‘전랑(戰狼·늑대 전사)’들과 맞서는 대만의 외교전은 힘겹다. 정식 외교활동에 가해지는 각종 제약 때문에 때로 서러운 분루도 삼켜야 한다. 건국기념일 행사만 해도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에 대다수 정부의 주미대사 등 대표단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만대표부의 한 인사가 웃음기를 지운 채 “우리의 상대는 너무도 크고 너무나 가까이 있다”고 말했을 때는 비장함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대만이 미국을 등에 업을 경우 판세는 달라진다. 대만이 미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TSMC의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자산과 함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다. 샤오메이친(蕭美琴) 주미 대만대표부 대표는 건국기념일 축사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우정과 지지에 감사한다”며 ‘민주주의’, ‘우정’, ‘동맹’ 같은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확고하다(rock solid)”고 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대만 외교관들은 자신들을 ‘고양이 전사’로 부른다. 샤오 대표가 “유연한 고양이 전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생겨난 표현이다. 말이 고양이라지만 이들 외교관들에게서는 남다른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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