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9개월째에 들어서고 있지만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물망에 오르는 후보 이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기존에 거론되던 인사들이 고사하거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후보군 물색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이에 대해 “불행하고도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자신이 떠난 자리를 채울 후임자가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 그에게도 불편한 듯했다.》
그는 최근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 이후에도 대사직 업무를 6개월 정도 더 하겠다는 뜻을 본국에 전달했으나 바이든 행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공개했다. 북한의 핵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특수성과 이런 부임지에서 미국대사로 활동하는 과정에 느꼈던 어려움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9개월이 지나도록 후임자가 지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사 지명은 주재국과 조율해서 이뤄진다. 지명자를 찾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고, 그 이후에도 상원 인준을 받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요즘 같은 정치적인 환경에서 이 과정에 긴 시간이 걸리다 보니 최종 인준까지 마무리된 대사는 현재까지 매우 적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경우 인선 절차가 더 빠를 수 있지만, 정치인 출신 지명자의 경우 현재의 치열한 정치적 지형을 볼 때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은 이미 대사 지명자가 임명됐다.
“한국에 보낼 대사 임명이 늦어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명 단계까지 이뤄졌다면 상원의 인준이 안 되는 상황을 문제 삼기라도 하겠지만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결국 (미국 정부)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의 핵심적이고 전략적인 동맹인 국가에 대해 아직 대사 지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고도 불행한 일이다. 외교관이든 정치인 출신이든 미국의 사절로서 대사는 있어야 한다.”
―대사 공백이 길어지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가.
“나는 (은퇴 전) 대사직을 좀 더 유지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정권 교체기 새 행정부의 인수인계 기간, 그리고 출범 초기에 바이든 행정부를 돕고자 했다. 북한은 여전히 서울에서 불과 60마일 떨어진 곳에 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도 계속되고 있던 모든 (한미 관련) 이슈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끝난다고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6개월 정도는 업무를 더 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팀은 당시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 결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를 지지한다. 트럼프 행정부도 앞서 전임 행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됐던 대사 대부분을 내보낸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마크 리퍼트 대사가 2017년 1월 퇴임했는데 내가 부임한 2018년 7월까지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공석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어쨌든 퇴임 이후의 삶을 여기 미국에서 시작하면서 돌아보면 그때 내가 그 제안을 했던 것은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주한 미국대사는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대사와는 다른 자질을 요구받는 자리인가.
“나는 원래 주호주 대사로 지명돼 있다가 막판에 한국으로 부임지가 바뀌었다. 주한 미국대사로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한국은 대사로 일하기 어려운 곳이다. 북한으로부터의 실질적인 위협이 존재하고, 주한미군과 관련한 일도 많다. 한국은 또한 매우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한미 동맹이 71년간 유지돼 왔지만 그동안 아무런 도전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한 미국대사는 그런 현실들과 마주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사실 그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은 국내 비판을 받은 대사로 평가된다. 인도태평양사령관을 지낸 군 고위 인사 출신으로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그를 향해 청와대와 외교부 내에서조차 “외교를 모른다”거나 “주재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등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껄끄러운 동맹 이슈들이 쏟아지던 시기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주한 미국대사 시절 한국 당국자들과 충돌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大使)’라는 한자 어원을 보면 ‘큰 사절’, 그러니까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사다.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주재국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반면 대사 임명 전 내가 맡았던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司令官)의 한자를 풀어보면 명령을 내리고 지휘를 하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업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대사로서 개인 입장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나의 임무였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했을 때 그것은 해리 해리스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서 갑자기 ‘5배를 더 내야겠소’라고 한 게 아니다. 좀 더 외교적인 방식으로 할 수는 있었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것은 대통령의 뜻이었고, 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대사로 일하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었지만, 그것이 매일 칵테일파티를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콧수염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상황은 힘들었을 것 같다.
“내 임기의 95%는 훌륭하고 멋졌다. 그러나 5%는 공격을 받았다. 일부 언론매체, 그리고 일부 정치인까지도 나의 인종적 배경을 문제 삼았다. (어머니가 일본인이어서) 내가 일본계 미국인인 것에 대해 공격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것도 한국의 최대 안보 동맹인 국가의 대사에 대해 이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런 비판이 나오는 것은 둘째 치고 청와대가 이런 상황에 침묵하는 것에도 실망했었다. 청와대는 인권 문제에 진보적이고 인권을 중심에 놓은 정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던가.
내가 받은 5%의 공격은 내가 일본계여서가 아니라 내가 대통령의 메신저였기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같은 현안으로 인해 받게 될 모든 비판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대사 본국의 입장은 주재국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대사는 피부가 두꺼워야 한다. 그러나 인종적인 논란은 좀 너무 나갔다. 그 5%의 공격은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한국의 친구들, 한국 음식, 그리고 내가 한 여행과 거기서 발견한 아름다움, 한국의 모든 면을 나는 사랑한다.”
해리스 전 대사는 은퇴해 고향인 콜로라도주로 돌아간 후에도 북한 핵 위협을 다루는 화상 세미나 등에 참석하며 한반도 관련 상황을 꾸준히 팔로업하고 있다. 지난달 추석 연휴 기간에는 “친구들과 송편을 즐기겠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은퇴 이후의 생활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아내는 나를 ‘은퇴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할 일이 계속 생겨서 제대로 은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아직 많은 강연과 인터뷰, 팟캐스트 의뢰가 들어오고 있고 기업의 이사 활동도 하고 있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멘토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지난주에 마음먹고 간 송어 낚시는 정말로 좋았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
△1956년 일본 출생 △미 해군사관학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사 △2009∼2011년 미 해군 제6함대 사령관 △2011∼2013년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 보좌관 △2013∼2015년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2015∼2018년 미 태평양사령부(현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2018년 7월∼2021년 1월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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