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가 알린 ‘취향의 시대’[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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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백예린 ‘안티프리즈(Antifreeze)’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조성모의 ‘클래식(Classic)’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리메이크 음반이다. 160만 장 넘게 팔리며 리메이크 음반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영애와 김석훈, 손지창 등이 출연해 일본 삿포로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다. 조성모의 전성기를 더 빛나게 해주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원곡에 대한 존중 없이 회사의 철저한 기획 아래 상업적으로만 이용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대표적이다. ‘가시나무’는 원작자인 하덕규가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만든 숭고한 노래였지만 조성모(와 기획사)는 이를 남녀 간 사랑 노래로 변질시켰다. 하덕규도 “조성모도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곡을 주었다”며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만들어질 줄 정말 몰랐다”고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조성모의 예를 들긴 했지만 원곡에 대한 존중은 숱한 리메이크 음반이 감당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리메이크 음반을 만든다는 것에 이미 충분히 상업적인 목적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음반을 만드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시대로부터, 대중으로부터 검증된 노래들을 다시 부른다는 건 그만큼 상업적으로 안전하다는 뜻이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연작 같은 훌륭한 반례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리메이크 앨범은 대동소이하다.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리메이크 음반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앨범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대부분 당대 많은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의 앨범이다. 선곡은 뻔하다 싶을 만큼 비슷비슷하다. 그동안 라디오와 TV에서 자주 들어온 1980, 90년대 노래들이다. 감상을 방해하지 않을 목적의 편곡도 비슷비슷해 선곡부터 음악까지 다 듣는 재미가 떨어진다.

얼마 전 또 한 장의 리메이크 음반이 발표됐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백예린의 ‘선물’이다. 기존 리메이크 음반과 비교해 ‘선물’은 두 가지 큰 차이점을 띤다. 첫 번째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제 2000년대 노래도 선곡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히의 ‘산책’, 검정치마의 ‘Antifreeze’, 넬의 ‘한계’, 이영훈의 ‘돌아가자’는 2000년대에 나온 노래다. 토이의 ‘그럴 때마다’가 유일한 1990년대 노래다.

또 하나는 이 음반이 철저히 취향에 기반한 선곡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선곡된 노래들은 대중에겐 생소한 노래다. 하지만 막상 들었을 땐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다. 백예린은 상업적인 전략보단 이 점에 더 큰 방점을 두었을 것이다. 가령 검정치마의 ‘Antifreeze’는 대중적인 히트곡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노래다. 이런 노래를 백예린이 다시 부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 것만으로도 음반의 기획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취향의 시대’는 이렇게 리메이크 음반에도 반영되고 있다.

#리메이크#취향의 시대#원곡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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