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 앞에 허겁지겁 내려줬다. 붐비는 도로에서 간신히 운전대를 돌려 회사로 향했지만 이미 지각은 확실했다. 간신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 숨을 돌리자 이번엔 아들의 학교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2학년 학생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교생이 급하게 하교를 시작했으니 즉시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황급히 조퇴를 한 엄마 A 씨는 그날 출퇴근길을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을 초1 담임교사라고 밝힌 필자가 A 씨와 같은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고비를 조목조목 짚어 큰 공감을 샀다.
글에서 묘사된 엄마들이 일터에서 나가떨어지는 과정은 ‘커리어의 오징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1단계: 점심 먹자마자 하교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2단계: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아이를 오후 5시까지 학교 돌봄교실에 맡겨야 할 때, 3단계: 그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해 아이 혼자 학원을 전전하게 할 때, 4단계: 난이도 최상의 ‘끝판왕’. 학교 내 돌봄교실이 없거나, 매일 등교 대상도 아닌 3학년이 되어 만 9세 아이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먹고 원격수업을 들을 때.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오늘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혹시 아이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교는 누가 해야 하나, 내가 일을 포기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지 않을까, 오늘이 마지막 출근은 아닐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워킹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쟁 같은 일상이 통계로 뒷받침된다. 응답한 워킹맘 10명 중 4명 이상이 심리척도 검사에서 ‘우울 의심’ 상태였다. 코로나19 속 절반 이상(52.1%)이 돌봄 공백을 경험했고, 그중 20.9%는 돌봄 공백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3.1%였다.
이들의 평균 자녀 수는 1.64명.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09명이었다.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낳으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 그 사이에 약 ‘0.5명’이라는 간극이 있다. 일과 가정 사이를 외줄타기하며 첫째를 키워내도, 결국 둘째가 태어나면 또다시 식은땀 나는 출퇴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코로나19 시기 퇴사한 워킹맘들의 ‘커리어 부검’을 제안한다. 넷플릭스에서 시작돼 여러 스타트업으로 전파된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 문화는 퇴사자들이 남은 구성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부검’을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여성의 고용률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는 30대에서 급락했다. 일터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 30대 여성들의 커리어 부검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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