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북한군이 차력을 선보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강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맞다. 차력은 놀랍고, 차력사는 강하다. 요즘에 차력은 무예보다는 묘기에 가깝지만 그래도 힘이 센 사람만이 행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강한 자의 차력, 그리고 소수의 차력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약하디 약한 차력사도 있을까. 소수가 아닌 다수가 하는 차력도 있을까. 나는 그런 것이 없길 바랐지만 시는 있다고 말한다. 유홍준의 ‘차력사’에 나와 있다. 이 차력사는 돌을 즐겁게 깨지 않는다. 그는 괴롭게 깬다. 누군가가 돌을 주니까, 깨라고 하니까 깬다. 속으로는 울면서 울면서 깬다. 이 세상에 사랑을 하러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차력사는 “이 세상에 깨러 온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다. 이 차력사는 바로 우리와 비슷하다. 여기에는 날마다 애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이 담겨 있다. 차력이란 아슬아슬한 단어다. 힘을 빌려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남의 힘, 약의 힘까지 다 끌어다가 단련하는 것이 차력이다. 그냥 내 힘만 가지고 살면 좋겠는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억지로 힘을 더 모아 돌도 깨고 쇠도 깨야 할 정도로 치열하다. 차력사의 고단함이 참 가련하다. 돌 많은 강가에 사는 우리들 차력사는 얼마나 많은 돌을 깨고 또 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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