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석사논문 제목이 공교롭게도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 방안에 관한 연구’다. 성남시장 출마 전인 2005년 가천대에서 썼는데 “인용 표시를 다 하지 않아 표절이 맞다”고 자인했지만 ‘지방 영주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단체장은 부패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의식은 대장동 사태를 내다보기라도 한 듯 1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이 지사의 지적대로 기초자치단체는 특히 비리에 취약하다. 성남시장의 경우 한 해 3조4000억 원의 예산 집행과 3200명의 공무원 인사, 각종 인허가 권한을 독점한다. 권한은 막강한데 보는 눈은 적으니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이 2015∼2019년 자치단체 인허가 업무를 감사해 징계나 시정을 요구한 대상도 92%가 기초 시군이었다.
이 지사는 개발 사업과 관련된 부패 실태를 상세히 기술했는데 “당선 또는 재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지방정치가와 부당한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 사이에서 부패가 발생한다”고 했다. 민관 합동 개발로 이익금 일부를 환수해 시장은 ‘성남시장 시절 최대 치적’이라는 정치적 스펙을 챙기고, 업자들은 부당한 떼돈을 벌어간 대장동 사업이 딱 들어맞는 사례다.
선거 공신의 인사 우대를 부패 행위로 규정한 점도 인상적이다. 그 자신도 성남시장 선거를 도운 유동규를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시의회에서 공사 설립 조례안을 통과시킨 뒤 2014년 선대위원장을 맡은 최윤길은 성남시체육회 부회장 자리에 앉혔다. 선거를 도운 폭력 전과자들이 시와 산하기관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백현동 개발 의혹의 핵심 인물로는 2006년 선대본부장 이름이 거론된다. 멀리해야 할 사람들을 ‘가까운 사람’으로 쓴 인사 부패가 인허가 비리와 합쳐져 역대급 게이트가 된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빤한 동네에선 직분에 맞는 거리 두기가 어렵다. 그만큼 단체장의 전횡에 쓴소리하기가 쉽지 않다. 단체장은 임기 4년에 3연임이 가능하다. 한번 눈 밖에 나면 10년 넘게 고생하니 내부고발은 언감생심이다. 외부 통제도 헐겁다. 논문에 따르면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시녀’이고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감시도 ‘부실’하다.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에 복종하는 게 민주주의 대원칙”이라는 단체장이 경찰이나 검찰이라고 무서울까.
이 지사는 탄핵 대상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달리 단체장은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만 아니면 징계할 수 없는 제도를 지방정치 부패의 요인으로 거듭 지적했다. 논문이 통과된 후인 2007년 주민소환제가 도입돼 단체장도 임기 전에 쫓아낼 수 있게 됐지만 주민투표까지 간 사례는 10건 정도다. 그것도 대부분 화장장 같은 혐오 시설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면 시장이 무슨 나쁜 일을 하건 다들 무관심한 것이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때가 1991년, 단체장 직선제 시행이 1995년이다. 이 지사의 논문은 직선제 도입 10년 후 나왔다. 그는 “지방자치를 폐지해야 한다는 극언조차 나오는데 근저에 지방부패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형사 처벌로 임기를 못 채운 단체장이 20년간 100명이 넘는다. 개발이 활발한 경기 용인시의 민선 시장 6명은 죄다 뇌물수수나 인사 비리로 구속됐다. 논문에 “권력의 필연성만큼 통제의 필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30년간 자치 분권과 지방 이양만 말할 뿐 지방권력의 감시와 견제에 눈감은 대가를 크고 작은 대장동 사태들로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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