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백신을 맞고 집에서 쉬는 사이, 영화 ‘50/50’(조너선 러빈 감독)을 봤다. 주인공 애덤(조지프 고든 레빗)은 술 담배는커녕 과식조차 안 하는 27세 남자다. 그는 새벽 다섯 시, 오가는 차 한 대 없는 건널목에서도 신호등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공영 라디오방송국에서 일하고, 여자친구와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운동은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누가 봐도 ‘바른생활 청년’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생존 확률 50%의 척추암 진단을 받는 데서 영화가 시작한다. 제목 ‘50/50’은 바로 그 상황에 대한 묘사다. 백신 부작용 뉴스가 세상을 뒤덮은 탓인지 영화 설정이 조금은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의사로부터 암 진단을 받은 순간 애덤 앞에는 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의 동료, 친구, 부모는 애덤이 곧 죽을지도 모르는 신세가 됐다는 데 충격을 받고 그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사실 애덤은 암 진단을 받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 허리에 약간 통증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또한 혼란에 빠진다. 그 상황은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코믹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 대본을 쓴 윌 라이저는 젊은 시절 암에 걸렸다가 회복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덕인지 암 환자가 맞닥뜨리는 부조리와 불편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묘사가 영화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 작품에서 사실 암보다 더 크게 애덤을 괴롭히는 건 그를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는 주위의 시선이다.
그런데 잠깐, 우리 모두 죽을 운명을 타고 나지 않았나. 나 또한 애덤처럼 살거나 혹은 죽거나, 정확히 반반의 확률에 미래를 걸 수밖에 없는 신세다. 지금 소중히 가꿔 가는 일상, 간절히 바라는 미래 모두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 그 현실에 애써 눈감은 채 때로는 웃고 때로는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모습은, 머리를 몸에서 떼어내 손에 든 채 껑충껑충 뛰고 있는 웨민쥔(岳敏君) 작품 속 한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웨민쥔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치아가 모두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웃는 남자 그림 연작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는 모두 웨민쥔 자신이다. 그는 1962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대학 졸업반 때는 ‘톈안먼 사태’가 터졌다. 거대한 외부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일찌감치 깨달은 그가 주목한 건 ‘웃음’이었다. 평론가 캐런 스미스는 웨민쥔 작품 속 남자의 웃음을 “무력감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라고 해석했다. 웨민쥔 연작 속 등장인물이 매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웃고 있는데도 어딘가 슬퍼 보이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매순간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죽음이 내 옆에 성큼 다가온 걸 깨달았을 때 “내게 왜 이런 일이”라며 절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미 내가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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