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6월에 소비자물가가 하반기(7∼12월)부터 안정 목표치인 2% 안쪽으로 떨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2%대 중반을 넘은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이며 농축수산물과 원자재 수급 여건이 개선되는 하반기에는 1%대로 떨어지고 연간 2% 선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기재부에선 누구도 ‘1%대 물가’ 얘길 꺼내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6일 국정감사에서 “올해 물가상승률을 2% 선으로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20일엔 “10월에 일시적으로 3%를 넘을 수 있겠지만 연간으로는 2%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또 물러섰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물가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10년 만에 3%대 물가상승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방주사’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국제유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정치경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대외 인플레 요인들을 통제하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날씨에 의한 작황 부진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잘될 거야”라는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너무 무게를 두면 최악의 시나리오인 ‘검은 백조’가 나타날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상반기(1∼6월)에도 고(高)물가 흐름이 꺾이기 어려울 것이란 시그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농축수산물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2.6% 뛰며 상반기 기준으로 1991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국제유가도 연초 대비 30∼40% 뛴 70달러 선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4월부터 2%대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정부는 6월 말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8%로 예측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3%대 물가상승률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경고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과 부정확한 예측은 ‘뒷북 대응’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2018년 9월 국제유가가 80달러를 넘나들자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다. 10월 말 유류세 인하 방침을 발표하고 11월 6일 유류세를 내렸다. 하지만 그 직후 두바이유는 배럴당 60달러,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유류세 인하로 세수만 축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 정부 들어 기재부 내부에서는 “경제는 심리다. 가능한 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들린다. 소비자물가, 일자리, 집값 등 경제지표와 관련한 장밋빛 전망도 많다. 경제는 심리이며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을 얘기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친 낙관은 정책의 실기로 이어지고 민생을 더 어렵게 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정책 효용이 떨어진다. 번번이 세수 예측에 실패하는 정부가 증세를 꺼내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재부의 희망 섞인 전망은 국민들을 위로하지 못한다. 전문성과 소신을 바탕으로 경제에 대한 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릴 때 정부에 대한 신뢰도, 경제에 대한 희망도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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