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은 말러에게 위기의 시간이었다. 장녀 마리아를 잃었고, 10여 년간 재직하던 빈 오페라 예술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심각한 심부전증으로 언제 심장마비가 올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의사의 권유로 시골에 여름 요양을 떠난 말러는 그때 중국 이백(李白·701∼762)의 시를 처음 접했다. 취흥이 올라 천재와 같은 번뜩임으로 시를 쏟아냈다는, 세상의 온갖 비탄을 짊어진 유랑객으로서 결국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익사하고 말았다는 이 전설적인 인물은 말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말러는 한스 베트게의 번안 시집 ‘중국의 피리’에 곡을 붙이게 된다. 왜 말러는 중국의 옛 시를 두고 작곡한 것일까.
말러는 유명 지휘자였지만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다. 어딜 가든 유대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은 뒤 그는 자기 삶을 회고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경계를 지우고 한계를 넘어서려는 마음과 더불어 근원과 본질, 곧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다. 그는 배경을 먼 나라 중국의 당나라 시대로 옮긴다. 말러는 자신의 상황, 맥락을 지우고 실존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자 했던 것이다.
첫 곡 ‘대지의 비탄에 관한 권주가’와 다섯 번째 ‘취한 사람의 봄’은 취객의 노래다. 거리낌 없이 취흥의 격정과 끝 모를 애상에 자신을 맡긴다. 인생무상에 대한 체념의 정조가 맨 정신으로 하는 말보다 더 진실하게 귓가에 울린다. 두 번째 곡의 주제는 고독이다. 가을의 정경은 아름답지만 음악은 기하학적으로 떠돌기를 반복하며 무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벗 없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고독의 위력 아닌가. 그에게도 한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세 번째 곡 ‘젊음에 관하여’와 네 번째 곡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좋았던 시절을 그린다. 하지만 이도 찰나처럼 지나고 인생에는 작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마지막 곡 ‘고별’은 그 자체로 반시간이 소요되는 대작이다. 중간에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장송행진곡’이 들어 있다. 마치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이 죽음은 하나의 정화 과정이다. “사랑스러운 대지처럼… 저 머나먼 곳 또한 영원히 푸른 빛깔일 게야. 영원히…!” 메조소프라노의 독백에는 더 너른 지평을 향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말러는 언젠가 괴테가 읊은 것처럼 “증오 없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닫으려” 한 게 아닐까?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과 가곡의 경계, 동양과 서양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혼종 음악’이다. 동방적인 5음계와 복합박자에서, 관현악과 솔로 성악의 조합에서 그런 뒤섞임을 느낄 수 있지만, 실은 우리 존재 자체가 뒤섞여 있지 않은가. 경계를 긋지 말자. 삶은 뒤섞여 있고 외로운 우리는 인간다움이 그립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말러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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