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승련]공부 못하던 친구의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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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시험은 한쪽 능력만 과대평가”
정치인이 외면하는 ‘착한’ 포퓰리즘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들딸 스펙 쌓기에 집착한 조국-정경심 부부는 깨닫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출신 대학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잘 못했던 친구가 훗날 성공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를 인터뷰한 적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창의력을 가르치는 래리 라이퍼 교수다.

그는 인간이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을 2가지로 나눈다. ①칠판 강의 듣기 혹은 출판된 책 읽기와 ②친구들이 모여 앉아 어제 본 TV 드라마를 웃고 떠들며 복기하듯 대화하기다. 전자가 일방향 정보 전달이라면, 후자는 쌍방향이다. “둘 다 50 대 50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검증이 끝났으니 토 달지 말라”고까지 했다.

라이퍼 교수의 주장은 낡은 교육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육제도는 일방통행식인 ①번에 능숙할 때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그 바람에 소수만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박사 의사 변호사가 된다는 구조다. 지필고사에는 약해도 ②번처럼 쌍방향 지식 흡수 능력이 좋은 학생들은 저평가되기 십상이다. 객관식 수능시험은 ②번 능력을 평가해내기 힘들다.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협업에 능하고, 누가 적임인지 가려내는 안목은 문제 풀이로 가려낼 수 없다. ‘나는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패배감은 수십 년 반복됐고, 응어리가 됐다.

라이퍼 교수의 설명을 전해 듣고 눈물을 글썽인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가 똑똑한 것 같은데, 시험 점수가 낮은 이유를 이제야 설명 들은 기분”이라고 반응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걸 잘 아는 전문가와 당국자들은 왜 그동안 바꾸지 않은 걸까. 사교육비로 고통받는 유권자가 바라는 걸 정치인들이 놓칠 리가 없지 않나. 과문한 탓이겠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런 필요성을 거론한 이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유일했다. 그는 2017년 대선 때 “언제까지 인-서울 아니면 루저냐”고 연설했다. 교육정책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주문이었다.

선거 포퓰리즘이라면 유권자의 환심과 표를 사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세금을 퍼붓는 걸 말한다. 기본소득(이재명), 반값 주택 50만 호(윤석열), 쿼터 아파트(홍준표)가 그런 쪽이겠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안 가져도 될 열패감을 덜어주는 구상과 정책은 포퓰리즘일까. 환심과 표를 살 수 있어 대중영합적이긴 하지만 ‘착한’ 포퓰리즘으로 부르고 싶다. 교육과 평가의 개념을 바꾸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현금복지 공약과 달리 큰돈이 들 것 같지 않다. 전문가의 깊은 궁리, 일선 교사의 장기적 관심과 노력이 훨씬 중요한 성공 열쇠다.

대장동과 고발사주라는 진흙탕을 헤매는 후보들이지만 대통령을 꿈꾼다면 달라진 세상을 읽어내야 한다. 칠판 앞 강의와 객관식 시험은 인류 역사에서 딱 100년쯤 먹혔던 제도다. 교육시장과 학부모의 마음을 잘 읽는 수능 1타 강사들이 한발 먼저 내다보고 있다. “수능은 죽었다”며 학생 평가 방식의 사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쉽게 예산 쓰고, 즉발적 효과가 나오는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오랜 시간 공들여 궁리하고 과정을 챙긴 뒤 그 결과는 퇴임 한참 뒤인 한 세대 후에야 나타날 아이들 미래정책은 뒤로 밀리고 있다. 손쉬운 포퓰리즘 앞에 착한 포퓰리즘은 설자리를 못 찾고 있다.

#라이퍼 교수#낡은 교육#미래정책#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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