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유력 대권 주자들의 과거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소년공 이재명의 ‘흑백 사진’과 나비넥타이를 맨 초등생 윤석열의 ‘컬러 사진’이다. 이후 가난한 집 아들과 부잣집 아들 논쟁으로 불이 붙었다.
사진을 공개한 쪽에서는 “어린 시절 이재명의 깨끗하지만 몸보다 훨씬 큰 옷에서 가난을 보았고, 윤석열의 딱 맞는 옷과 나비넥타이에서 부유함을 보았다”면서 서민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흙수저’ 출신임을 강조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가난을 ‘스펙’과 ‘패션’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취약계층을 욕보이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급기야 원래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바꿨다는 조작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러한 공방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이 절묘하게 편집된 사진 한 장으로 경쟁 주자의 약점을 제대로 꼬집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문의 일패를 당한 윤석열 캠프 측도 윤 후보의 ‘어린 시절’ 사진을 잇달아 공개하기 시작했다. 운동회 날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동생과 함께 눈사람 만드는 사진을 올리면서 친근한 모습을 드러냈다. 말할 때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일명 ‘도리도리’ 버릇과 ‘쩍벌’ 자세로 구설에 오르자 반려견 토리와 함께 ‘셀프 디스’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기도 했다.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옹호 발언’을 만회하기 위해 올린 ‘개 사과’ 사진은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스스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과거 검찰총장 시절 윤 후보의 사진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도 이번 사태에 한몫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는 총장 재임 당시 사진 찍히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관료였다. 그는 취재진 카메라를 피해 청사 정문 대신 매일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출근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기도 했다. 그나마 총장의 얼굴을 찍을 수 있었던, 대검 청사에서 구내식당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통로를 선팅으로 도배한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철저하게 카메라를 피해 다녔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미지 친화적 행보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윤석열 측에서는 “SNS는 복요리와 같아서 아무나 하면 사람 잡는다”는 같은 당 이준석 대표의 말이 뼈아프게 들릴 것이다.
여론조사 상승세를 탄 홍준표 후보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올 초만 해도 홍카콜라 TV에 출연해 “모양 꾸며서 선거할 생각 없다”며 “이미지 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TV 예능에 출연해 아내를 향한 사랑꾼 면모를 보여줬고, 대학 시절 웃통 벗은 복근 사진을 공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에는 강릉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을 방문해 조폭과 싸운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경쟁 후보들에 비해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거친 발언을 줄이고 오히려 품격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상황만 보면 국지적인 이미지 전쟁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우세해 보인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다져진 이 후보의 디지털 근육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선거 포스터를 그대로 차용해 남다른 이미지 감각을 발휘했다. ‘친문’의 감성을 자극한 해당 홍보물은 디자인 특허 소송을 벌여도 될 만큼 글자 크기와 색상,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문 대통령 포스터와 유사했다. 4년 전 19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 후보의 검은 머리가 얼마 전 경선 포스터에서는 백발로 바뀌었다. 현재 만 56세로 생각보다 젊은 이 후보가 나이를 감추고 백발이 풍기는 안정감으로 고령 유권자들에게 구애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외형적 이미지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이 선거운동의 핵심 전략으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존 F 케네디는 대표적으로 이미지를 활용해 정치적 성공을 거둔 인물로 평가받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재앙을 몰고 온 히틀러도 이미지 메이킹의 대가였다.
그러나 국내외 정치 상황을 보면 이미지 선동 정치가 국민들을 분열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례가 적지 않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겉으로 보이는 후보들의 이미지에 속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은 정책 능력이다. 국민에게 시대정신을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에만 몰두하고 정작 콘텐츠가 없는 쭉정이 같은 정치인들에게 유권자들이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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