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한강대교를 자주 걷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데 이만한 곳이 없다. 다리 중간 노들섬에 이르면 2년 전 개장한 라이브 공연장을 찾은 아베크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연과 문화, 사람이 어우러진 공간이 삶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올 들어 금속뭉치들이 한강대교 난간 위에 길게 설치되고 있다. 자살방지용 ‘안전난간’으로 불리는 롤러다. 키 180cm 이하 보행자 눈높이에 위치해 스카이라인을 딱 가린다. 강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앞서 서울시 당국은 자살 시도를 막겠다며 마포·한강대교에 일반시민과 유명인사들이 쓴 자살 방지 문구를 2012년부터 난간에 새겨 넣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올해에만 약 1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안전난간 공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마포대교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한 후 투신 시도자 수가 26.5%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인근 한강·양화·서강대교의 투신 시도자 수는 되려 38.5% 늘었다.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다른 다리에도 안전난간을 확대 설치할 방침이지만, 모든 다리에 설치한들 자살 시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안전난간 설치에 들어가는 예산을 자살예방 프로그램 등에 투입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생명 존중’이라는 절대 가치에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쉽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면 “그깟 돈 몇 푼과 시민들의 조망권을 감히 자살방지 효과와 비교할 수 있느냐”는 반론에 부닥치기 일쑤다.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에 대한 방역수칙 논란도 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확산 국면이던 지난해 2월 전국 국립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문을 일제히 닫았다. 이후 잠시 재개장됐지만 그해 5월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터지자 수도권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시 폐쇄했다. 전시 특성상 관람객 간 대화가 거의 없는 데다 마스크 쓰기와 인원 제한이 철저히 지켜졌음에도 유흥업소와 같은 수위의 조치가 시행된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들이 ‘쉴 공간’을 찾아 카페 등 다른 곳으로 몰리는 풍선효과였다. 이후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힘든 소규모 집단감염이 창궐하면서 확진자 수는 급증했다. 감염 예방이라는 절대 가치 추구에 정책 실효성이 훼손된 셈이다. 정부는 뒤늦게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는 이달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의 관람인원 제한을 풀기로 했다.
오바타 세키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올 7월 국내에 번역 출간한 ‘애프터 버블’(미세기)에서 일본 정부가 생명논리에만 빠져 과도한 방역대응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한다.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논의가 봉인되고 감염 방지에만 몰두했다는 것. 그는 “코로나 대책에서 효율성 논의는 봉인되고 그저 거리 두기를 해달라며 의료진에게 감사를 건넸다. 논의 없이 감정적으로 넘어가려 한 것”이라고 썼다.
생명 존중이라는 지고지순의 가치에 반기를 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방역을 포함한 국가정책에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실효성 내지 효율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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