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지의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서 추락하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한 공포감과 속도감을 맛보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고개의 정상에 섰다. “봐라, 송도다. 대처다.” ―박완서 ‘엄마의 말뚝1’ 중
나는 소설 ‘엄마의 말뚝’ 첫 부분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글이 처음 나온 1980년에도 이 소설을 읽었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문장이 머리와 가슴에 와 닿으며 충격을 받은 것은 최근이다.
어린아이가 할머니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낙원 같은 고향을 떠나 개성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농바위 고개를 오르며 추락을 느끼고 공포감과 속도감을 맛본다고 한 그 문장을 읽으면 어머니 문학의 서곡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래를 향한 예지가 아니었을까. 나는 어머니 문학으로 용기와 힘을 얻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의 글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개인의 아픔과 시대의 상처를 후벼 파고 마주하는 게 힘겨웠다. 그러나 이제 이런 문장을 반복해 읽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어린아이들 속에 숨은 큰 힘을 보게 된다. 이미 말년에 이른 나조차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를 품게 된다.
어머니의 문학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주저앉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말뚝’에는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비단 그 당시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하는 발견을 하고 뒤늦게 놀랐다. 문장처럼, 많은 이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쳐 자유롭게 나아가는 상태를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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