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던 날의 20주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부임했던 2001년 9월 11일은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해 한국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낸 슬픈 날로 전 세계는 기억하고 있다. 미국 영토에 대한 그 충격적인 공격은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꿔놓았고, 주한 미국대사로서 나의 재임 기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때 무엇을 알게 됐고 이후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때가 된 것 같다.
9·11테러 이후 한국인들은 우리와 한편에 섰지만, 한미 관계에서는 쉽지 않은 시기였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핵심적인 사안을 놓고 의견이 맞지 않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관여시키기 위해 협력해오던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돌연 전임자의 정책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거두자 실망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고는 우려가 더 커졌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어린 두 소녀인 신효순 심미선 양이 훈련 중이던 미군 차량에 치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자 한국 정부와 국민은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에서의 대규모 반미 시위는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흔들었다.
이런 배경과는 별개로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의 출현은 한미 동맹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생각을 나는 오랫동안 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군의 주둔 규모를 줄이고 미국과 외교적으로 거리를 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예상과 달리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한강 이남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미군 주둔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긴밀히 협력했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으로 더 넓은 동맹의 목표에 뜻을 함께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우리는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관여시키기 위한 노력을 재개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팀은 현명하게 이 기회를 잡았다.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한 포용의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애쓴 것도 나는 높이 평가한다. 그는 이런 시도가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과의 연대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봤다. 파월은 1970년대 비무장지대 근처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한국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키웠고, 이는 국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재임 기간에 (한반도의) 긴장을 줄이려는 노력에 반영됐다.
노무현 대통령 후임자들은 한미 무역관계를 서로에게 성공적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 대통령들과 협력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보건과 공급망 관리 등 글로벌 주요 이슈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양국 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이끌어냈다. 이제는 점점 더 공세적이 돼 가는 중국의 부상이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돌아볼 때 내가 가장 실망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가 북핵 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통일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충돌을 피해 왔다는 것은 그래도 좋은 뉴스다. 이를 넘어서 더 나아가려면 지속적인 동맹 결속 및 북한과 접촉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장 기쁘고 놀랍게 한 점은 한국 문화가 미국의(심지어 전 세계의) 의식을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 노래가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미국인들이 ‘오징어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 시리즈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커지는 문화적 친밀감이 양국의 중요 현안들에 대한 더욱 긴밀한 협력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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