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김현식과 유재하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이 장식하면, 11월의 시작은 유재하와 김현식의 노래가 연다. 유재하와 김현식은 1987년과 1990년, 3년 간격을 두고 11월 1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유재하는 교통사고, 김현식은 간경화가 사인이었다. 함께 음악을 했었고, 같은 날짜에 세상을 떠난 둘의 인연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고, ‘11월 괴담’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2집 ‘사랑했어요’로 성공을 거둔 김현식이지만 스스로는 세션 연주자들과 만든 2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하나의 밴드를 만들고 싶어 했고, 주변의 재능 있는 후배들을 모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를 만든다. 보컬리스트 김현식을 중심으로 김종진(기타), 장기호(베이스), 유재하(키보드), 전태관(드럼)이 함께한 슈퍼그룹이었다.
김현식은 후배들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각자 쓴 곡을 가져오라 했고 그 곡들을 3집에 담았다. 뒤이어 들어온 박성식(키보드)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비롯해 김종진의 ‘쓸쓸한 오후’, 장기호의 ‘그대와 단둘이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등 반짝이는 곡들이 김현식의 전성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잦은 폭음으로 인한 돌발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은 밴드 멤버들을 힘들게 했고, 대마초 흡연과 필로폰 복용으로 활동이 멈춰졌다.
혼자가 된 김현식은 1988년 4집을 발표하고 재기 콘서트를 갖는다. 5집을 발표할 때쯤에 그의 건강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는 술병을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떨려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술에 취한 채 녹음실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해야 했다.
그렇게 가장 힘든 시기에 나온 앨범이 5집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앨범이지만, 이미 그때 그는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작가 김중만이 찍은 음반 커버도 더없이 어둡고 우울하지만, 타이틀곡 ‘넋두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결코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불안하게 들리는 초침 소리와 함께 들리는 거칠다 못해 잔뜩 갈라진 김현식의 목소리는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그가 “갈 테면 가라지 그렇게 힘이 들면”이라고 소리칠 때 그는 이미 생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김현식은 죽음까지도 노래로 표현했다.
앨범 한 장에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던 김현식은 6집을 준비하던 도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 ‘내 사랑 내 곁에’가 온 거리와 방송에서 쉼 없이 흘러나왔다. 얄궂게도 그는 죽어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 김현식의 ‘넋두리’를 들으며 삶과 예술을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뻔한 말은 김현식의 노래 앞에서 특별해진다. 어릴 적 그렇게 어른의 음악처럼 들렸던 김현식의 노래는 겨우 서른 안팎의 나이에 부른 노래였다. 이유가 있었다. 온 삶을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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