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총리가 어제 “주머니 막 뒤지면 돈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추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주장에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김 총리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나랏빚이 1000조 원에 다가섰고, 소비자물가는 9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또 돈을 뿌리면 물가를 자극해 서민 고통이 커질 수 있다. 돈 뿌릴 형편도 안 되고 효과도 의문인데, 재난지원금 카드를 다시 꺼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후보는 초과 세수로 재난지원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연말까지 10조 원 정도 더 걷힐 예정이지만 이 돈은 한 해 나랏빚 이자에도 못 미친다. 무분별한 재정 확대로 올해 이자로만 18조 원을 써야 할 처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2월 이후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이 후보는 국민 1인당 30만∼50만 원을 얘기했다. 이 돈을 받아 봐야 물가가 치솟으면 되레 마이너스다. 이런데도 굳이 돈을 뿌리려는 이유가 뭔가.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가계 부채를 줄이느라 금리를 올리고 대출 규제에 나섰다. 나라는 빚을 펑펑 내면서 가계는 부채를 줄이라고 하고, 금융당국은 돈줄을 죄는데 유력 대선 후보는 수십조 원의 재난지원금을 뿌리자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고 정책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이 후보는 “결단의 문제이고 국민 여론이 형성되면 따르는 게 관료와 정치인”이라고 했다.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재정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관료들의 의무다. 불확실한 여론을 내세워 관료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관료가 정치인 눈치만 보게 되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시정연설에서 초과세수 일부를 채무상환에 쓰겠다고 했다. 국가재정법도 초과세수로 나랏빚을 우선 갚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재난지원금에 대해 “그건 나중에”라며 답을 회피했다. 여당조차 의견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후보는 재정을 악화시키고 효과도 불투명한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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