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에 맨발로 쫓겨난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부모는 이따금 옷을 홀딱 벗겨 집 밖으로 내쫓았다. 아이들은 부끄러워 멀리 가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로 집 앞을 서성였다. 소설가 황정은은 지난달 발간한 에세이 ‘일기’에서 이런 장면을 묘사하며 ‘내 것이지만 고통은 공유하지 않는 몸’이라는 표현을 썼다.
부모의 소유물처럼 대접받는 아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불과 지난주에도 광주 북구에서는 행인과 자동차가 오가는 거리에서 아이를 발로 걷어차던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아동권리보장원이 발간한 2020년 아동학대 통계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총 43명. 이 중 “때리지 마세요”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조차 없는 3세 이하 연령의 아이가 29명이다. 물론 이 숫자는 드러난 피해자들의 기록일 뿐 통계조차 없이 사라진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국민적 공분이 일면 각종 청원과 캠페인이 뒤따랐다. 소셜미디어에 피해 아동의 이름과 함께 ‘미안해’라는 글이 이어졌다. 분노의 크기만큼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은 다행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0명 중 915명이 ‘아동학대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맨발로, 혹은 벌거벗겨진 채 덩그러니 길에 서 있는 아이를 보면 ‘아이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낄 어른은 이제 많아졌다. 사회의 인식은 분명 아동에 대한 체벌과 방임은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되는 사례를 본 적이 있지만 신고하지는 않았다’는 응답이 84.7%에 이른다. ‘훈육이라 생각했다’는 이유만큼이나 많았던 것은 ‘신고가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없다’는 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도는 아직도 국민의 정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갓난아기를 변기에 넣고 동거녀를 협박한 한 남성은 최근 항소심에서 감형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신고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냉소는 아동학대 해결의 가장 큰 적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영아에서 유아로 전환되는 만 3세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과 함께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런다고 해결될까’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음 외에는 고통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아이들을 구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작가의 에세이 한 토막을 전한다. ‘어른들은 이웃에서 어린이가 울면 주의를 기울이고, 어린이가 맞고 있지는 않은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지는 않은지 걱정할 것이고, 주저 없이 그의 부모를 의심할 것이고,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최소한 공권력이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 집 기척에 귀를 곤두세울 것이다. 그렇게 하는 어른이 이웃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고 그 다음을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이 되어 줄 것이다.’
어른들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지금도 곳곳에 있다.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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