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어제 제1야당인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입당 98일 만이다.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반반씩 합산한 최종 득표율은 47.85%였다. 여론조사에선 홍준표 의원에게 10%포인트가량 뒤졌지만 당원 투표에서 앞서 본선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민심과 당심이 확연히 엇갈리는 결과였다. 특히 일반 여론조사에서 37.94%를 얻는 데 그친 것은 그로선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중도 확장, 본선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반 국민의 낮은 지지율은 잦은 실언과 국민과의 공감능력 부족 등 ‘정치 신인’의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표시한 채 TV 토론에 나온 데 이어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고 해 대선 주자로서의 소양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됐을 정도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버티다 이틀 만에 사과를 해놓고는 인스타그램에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검찰총장 사임 이후 8개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4개월간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국가 비전을 딱히 보여준 게 없다는 점도 한계다. 눈에 띄는 변변한 공약을 내놓은 것도 없고 일부는 ‘표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어제 수락 연설에서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등 경쟁 후보들의 대표 공약을 자신의 공약에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만의 대표 공약을 내세운 건 없었다.
윤 전 총장은 “이번 대선은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과의 싸움, 합리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싸움”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당내 경선과 본선 싸움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막연한 ‘정권 심판’이나 ‘정권 교체’ 구호에만 머물러 있으면 집권 여당의 각종 프레임 전환 전략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결’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주요 후보들이 얽힌 각종 의혹과 설화, 포퓰리즘 논란 속에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3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시대 변화의 물결을 정확히 읽고 큰 틀의 미래 비전, 정제된 메시지와 정교한 공약, 창의적이면서 안정된 리더십을 보여주며 중도층과 20, 30대 젊은층의 지지를 얻어내야 정권 교체도 가능해질 것이다. 정권 교체 여정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단일화’ 전략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대검의 장모 대응 문건 작성 의혹을 비롯해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 ‘사법 리스크’도 넘어야 할 벽이다.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고 해서 수사가 지연되거나 실체가 흐지부지될 수 없다. 야권으로선 이제 ‘윤석열의 시간’이다. 본선 링에 오른 만큼 더 이상 정치 신인 대접을 받을 단계는 지났다. 그는 “정권 교체가 나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존재 이유를 입증하기 위해선 훨씬 진지한 태도와 구체적인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또 국가 비전 제시 없는 정권 교체 외침은 공허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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