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우리 사회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를 좀 더 이해하고 백신을 만들어냈다. 치료제도 하나둘 등장하며 본격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시작됐다. 우리가 사는 자연에서는 무수히 많은 생물 종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다툰다. 바이러스도 이 전쟁에 참여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을 가장 무서워했다는데, 여기 등장하는 마마 역시 바이러스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진 흑사병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을 계기로 주목받았다. 흑사병이 유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더욱 발전된 교통은 하나의 지구촌에 더욱 빨리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한편 지금의 인류는 훨씬 발전된 보건의료 체계와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덕에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mRNA 백신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개발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맞이한 ‘위드 코로나’, 나아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의 진입을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2020년 노벨화학상은 유전자 기술의 혁명이라 불리는 ‘유전자 가위’에 수여됐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이다.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에 담긴 정보는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해진다. 혈액형이나 눈의 색깔을 비롯해 특정한 질병에 취약한 체질 등의 정보가 대물림된다. 유전자 가위는 정보가 담긴 유전자를 잘라내고 편집한다. 마치 어린이들이 색종이를 이리저리 자르고 붙여 예쁜 미술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혹자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진화를 거쳐 탄생한 인류가 이제 진화의 설계자가 됐다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원하는 대로 설계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유전자 가위와 유전자 편집의 최종 종착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술이 불러오는 어두운 미래와 윤리적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아직 유전자 가위가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기에는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고, 어쩌면 영화나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는 모습일 수 있다.
인간인지 아닌지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SF영화에서 그려지는 ‘인간 다음의 인간’이 유전자 가위의 주요 관심사나 연구대상은 아니다. 유전자 가위로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가령 상처가 나 흘러나오는 피는 곧 멈추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혈액이 굳지 않아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이 혈우병이다. 아주 오랫동안 알려진 병이고 유전되는 질병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즉, 어떤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이 병에 걸리는지 알고 있다. 오랫동안 혈우병은 치료법이 없었다. 환자에게 피를 굳게 하는 약을 놓거나 수혈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변이를 일으킨 문제 유전자를 고칠 수 있다면 혈우병 치료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됐다. 병의 원인인 유전자를 정확히 잘라내고 고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혈우병 같은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알츠하이머 역시 특정 유전자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유전자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라면, 치매 역시 유전자 가위가 정복할 대상이다.
유전자 가위가 농업에도 새로운 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 최근 일본의 바이오 기업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토마토를 팔기 시작했다.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교정한 최초의 농작물이다. 이외에도 근육량을 늘린 참돔과 광어가 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색깔이 변하지 않는 버섯도 유전자 가위로 만들어냈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줄어든 밀도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 유전자 가위는 감염병에도 쓰인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단시간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검사를 받은 이후 몇 시간 기다려야 하는 PCR 검사나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는 신속진단에 비해 획기적인 진단법으로 소개됐다.
코로나바이러스 정복에는 유전자 가위 이외에도 여러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화이자, 모더나로 널리 알려진 mRNA 백신 이외에도 진단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합성생물 분자진단기술을 이용해 PCR 수준으로 정확하면서도 신속진단처럼 빠르게 검사가 가능한 기술이 개발됐다. 분자진단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분자 수준의 변화를 평가한다. 그동안은 암이나 당뇨, 식중독 등의 진단에 쓰였다. 하지만 이들 질환은 빠른 진단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이, 분자진단기술의 가치 역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속속 개발되는 분자진단기술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등장하게 될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기에도 용이하다. 그동안 인류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싸워 이겼다. 바이러스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바이러스로 우리를 위협했다. 그러니 더욱 무서운 바이러스가 삶을 뒤흔들 미래의 출현은 확실하다. 그간의 진단기술은 우선 새로이 등장한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이에 맞는 진단법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국에서 첫 코로나바이러스 보고가 있은 이후 곧바로 진단 기술 개발에 들어간 것이 초기의 성공적인 K-방역을 이끌어냈다. 분자진단기술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진단기술 개발을 더욱 쉽고 빠르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되고 상용화 역시 진행되고 있다니, 바이러스 정복 전쟁에 화이자나 모더나 외에 우리나라 기업이 언급될 미래도 머지않은 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