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가 1902년에 쓴 교향곡 5번 다섯 개 악장 중에서 네 번째 악장인 ‘아다지에토’는 매우 탐미적이고 도취적인 음악이다.
이 곡은 특히 인기가 높아진 계기들이 있었다. 하나는 1971년 발표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한 예술가의 탐미적 의식과 파멸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작품이 말러의 아다지에토였다.
이 영화가 나오기 3년 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당했다. 형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5년 만이었다. 뉴욕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번스타인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했다. 이후 이 음악은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하는 음악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추모의 음악으로 쓰이는 데 대해 반대 의견도 있다. 말러 연구자이자 아마추어 지휘자인 길버트 캐플런(1941∼2016)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캐플런은 말러와 절친했던 네덜란드 작곡가 빌럼 멩엘베르흐의 얘기를 소개한다. 말러는 연애 시절 훗날 자신의 신부가 되는 알마에게 이 곡의 악보를 보냈다고 멩엘베르흐는 얘기한다. 알마는 즉시 이것이 자신에게 주는 말러의 러브레터임을 알아차렸고, ‘내게 오세요’라는 회답을 보냈다는 것이다. 멩엘베르흐는 알마와 말러 두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멩엘베르흐는 말러가 알마를 위해 쓴 시도 소개한다. 아다지에토의 선율에 맞춰 불러 보면 그 시작부는 가사와 선율이 일치한다. “그대 나의 사랑, 나의 태양이여/그대에게 말로는 이야기할 수 없소/나의 동경….”
말하자면, 이 아다지에토는 사랑의 음악이지 죽음의 음악이 아니니까, 장례식에서 쓰거나 애도의 장면에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캐플런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의 음악인 아다지에토는, 그동안 장송 음악처럼 너무 느리게 연주되었다. 더 빨리 연주해야 한다. 앞에 말러의 러브레터 얘기를 소개한 멩엘베르흐도 이 곡을 훨씬 빠르게 연주했다.” 맞는 이야기일까.
멩엘베르흐가 지휘한 이 곡을 들어 보면 실제로 훨씬 빠르게 들린다. 번스타인이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에서 연주한 실황은 11분 6초다. 멩엘베르흐 연주는 7분 9초. 번스타인이 두 박자를 가는 동안 멩엘베르흐는 세 박자를 가는 셈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빠르건 느리건, 사랑의 음악은 추모나 장례에 쓸 수 없는 것일까.
말러의 가곡인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는 그가 교향곡 5번 1년 전인 1901년에 쓴 곡으로, 아다지에토의 원형이 된다고 분석되는 작품이다. 선율이 떠오르듯이 시작되는 시작 부분이나, 반대로 깊이 가라앉듯이 꺼져가는 마지막 부분이 닮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내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세상에서/사람들은 생각하리라, 내가 죽었다고/ (…) 그러나 나는 홀로 나의 천국에 산다./내 노래 속에, 내 사랑 속에.”
말러가 활동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인간의 여러 본능, 특히 타나토스라고 일컬어지던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 즉 사랑의 본능이 깊은 연관을 갖는다고 해석되는 시기였다. 말러의 심리 상담을 했던 프로이트는 그런 정신적 흐름을 대표했다. 같은 예술 작품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곡들을 쓰기 직전인 1901년 2월에 말러는 죽음의 문턱을 넘보고 왔다. 대량의 장기 출혈을 겪었던 것이다. 의사는 조금 더 출혈이 계속됐으면 말러가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의 문턱을 엿보고 온 말러에게는 결혼으로 이어질 새로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어진 죽음과 사랑의 거대한 심리적 흐름을 말러는 한 곡에서 동시에 표현하지 않았을까.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말러와 그에게 영향을 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실내악 연주회 ‘구스타프 말러를 위하여’가 열린다. 말러 연구가 김문경이 해설을 맡고 말러 ‘아다지에토’도 연주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