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한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고 찬 기운 서린 낡은 집에 들어설 때, 이제는 아득한 어릴 적 할머니 집의 추억으로 나도 함께 들어선다. 혜원을 따라 정겨운 고향집에서 다정한 친구들과 사계절을 나고 나면, 여지없이 욕심이 인다. “우리도 시골에 집 하나 살까?” 그런다고 없던 추억, 없던 고향 친구들까지 생길 리는 만무하지만, 서울살이가 지칠 때 언제든 두 팔 벌려 맞아줄 공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집 하나를 사고 고칠 비용이면 펜션을 몇 번 갈 수 있는지 계산기만 두드릴 뿐. 강단 있고 솜씨 좋은 사람들의 ‘시골집 셀프 개조’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할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적한 곳에 맘에 맞는 집 한 채 짓고 산다면 좋지 않을까 몽상한다.
비슷한 마음일까. ‘시골’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호캉스(호텔+바캉스)’ 대신 ‘촌캉스(시골+바캉스)’, ‘오션뷰’ 못지않게 ‘논밭뷰’가 인기다. 옛것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레트로 열풍과 더불어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장기화가 빚어낸 풍경이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숨겨진 국내 여행지를 찾고자 하는 욕구도 반영된 것이리라.
SNS 인기 채널에 소개되거나 인플루언서들이 다녀간 시골집은 몇 달 전에도 예약이 힘들다. 시골 경험이라고는 ‘농활(농촌봉사활동)’밖에 없는 또래들이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드레스코드는 단연 ‘몸뻬 바지’다. 숱한 이들의 ‘촌캉스’ 인증샷을 보며 나는 옷장 한쪽에 쌓여 있는 몽골에서 산 잔꽃무늬 치마, 인도에서 산 항아리 바지 따위의 것들을 떠올렸다. 해외에서 충족했던 ‘낯선 경험’의 욕망을 시골 체험이 충족해 주고 있었다.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이 시골 정착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는 걸까. 지난해 30대 이하 귀농 가구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은 SNS 활용 능력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들을 다루는 앵글은 ‘도시의 삶에 지친’, ‘치열한 경쟁을 뒤로하고’와 같이 피동적이고 도피적이다.
‘도시의 피난처’로 시골이 조명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청년농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시골에서 위로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농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귀농은 단순히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전직(轉職), 그중에서도 창업에 가까운 전직이다. 치열한 준비 없는 창업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우리에게는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처럼 지역 터줏대감 고모도, 이미 자리 잡은 농업인 친구도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삶의 터전은 치열하다. 그곳이 어디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일구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찾고 싶은 ‘작은 숲’은 단순히 삶의 터전이 아닌 그 어딘가, 점수 매기지 않을 그 누군가의 품 안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지도. 눈만 감으면 펼쳐지는 너른 벌판을 저 아래 품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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