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는 피분석자의 도덕성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객관적으로 사실과 어긋나도 마음에서는 자격이 충분한 ‘주관적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피분석자가 분석가와의 관계에서 자주 부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면 분석이 어떻게 될까요?
정신분석이 모두에게 적합한 방법은 아닙니다. 원한다고 하면 일단 분석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신경 써서 살필 점은 그 사람이 자신과 남의 마음을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 마음자세’인데, 핵심은 정직함이며 솔직함, 성실함까지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분석은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인데, 특히 피분석자가 감추거나, 회피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멈추거나 실패합니다. 예비 평가에서 분석가는 ‘피분석자 후보’를 다섯 번 정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분석이 가장 적합한 방법인지, 다른 치료를 권할지를 결정합니다.
꼼꼼하게 시작해도 분석 과정에서 피분석자가 항상 정직, 솔직, 성실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수치감, 죄책감을 느끼면 감추고, 장점은 부풀리고, 단점은 축소해 말합니다. 숨기고 싶은 일은 쉽게 기억을 못하고, 기억이 나더라도 왜곡해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이 방어기제에 불을 밝혀서 그렇게 작동하는 겁니다. 방어기제에도 등급이 있어서 미성숙한 것부터 성숙한 것까지 나눌 수 있습니다. 미성숙 방어기제의 대표는 부정(否定)입니다. 뻔한 사실을 그렇지 않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겁니다. 성숙함의 대표는 이타주의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저항 분석, 전이 분석도 중요하나 방어 분석도 쓸모가 큽니다. 분석으로 적응에 장애를 일으키는 미성숙 방어기제를 성숙한 쪽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피분석자가 정직하지 않게 언행을 하면 분석가가 아닌,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분석 시간은 이어져도 분석의 흐름은 멈추게 됩니다.
피분석자가 부정직함을 보이는 형태로써 솔직하지 않은 점은 수동적입니다. 적극적인 경우는 마음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말을 하다가 별 소용없는 말로 바꿔 말하는 겁니다. 회피이자 유인책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와 불편했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백화점에 화장품 사러 갔다가 보낸 시간을 자세하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며 이어갑니다. 그러면 분석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아, 하던 말을 바꾸니 뭔가 대단히 거북했기 때문이구나”라고. 그리고 묻습니다. “방금 부모님과 힘들었던 관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다른 이야기로 바꾸셨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은 말을 바꾼 행위가 부모 이야기에 불편해진 마음을 다른 이야기로 옮겨서 보호하려는 의도, 대개는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적 의도를 숨기고 있으니, 찾아내서 분석하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피분석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방법은 약속 깨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해진 약속 시간에 말없이 나타나지 않으니 심각한 일입니다. 되풀이하면 분석가의 애를 태웁니다. 내적 성찰로 분석이 진행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스스로 뺏어서 파괴하는 행위인데, 반복되면 중단을 넘어 분석이 파경에 이릅니다.
분석이 정체되면 분석가는 고민의 늪에 빠집니다. 이때 난관을 헤쳐 나가는 분석가의 도구는 반복적인 해석입니다. 정체된 분석은 주로 피분석자의 개인사가 분석 현장으로 전이되어 재현된 것입니다. 과거 경험을 분석과정에서 강박적으로 되풀이하는 겁니다. 현대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장애가 아닌 기회로 봅니다. 분석가는 피분석자가 스스로를 속이며 파괴하려는 숨은 동기를 찾아내 해석해 줍니다. 분석에서 얻는 통찰이 없으면 자기파괴적 성향은 과거를 현재에서 되풀이하며 고통을 줍니다. 미래에도 반복될 겁니다. 통찰이 부족하면 피분석자는 자신이 겪는 힘든 삶이 남 탓이라는 투사적 주장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에 담긴 부정적 경험에는 스스로 만들어 낸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분석에서 나타나는 저항과 방어는 피분석자가 특히 인생에서 주요 고비를 만났을 때 숨긴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저항과 방어는 삶을 확장이 아닌,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성공의 문턱에서 성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엉뚱한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분석으로 통찰을 얻어야 그러한 사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사회로 눈을 돌리면 부정직의 춤판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음이 환히 보입니다. 부정직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본보기인 속이기, 약속 깨기, 훔치기, 거짓말하기, 유인하기의 완전체는 미세먼지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도 피분석자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분석이라는 진공상태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풀어놓습니다. 카우치 뒤에 앉은 분석가는 그 이야기에 담긴 정직함, 솔직함, 진정성의 순도를 높여 피분석자가 자신의 마음을 연마하는 과정을 도우려고 땀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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