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모스크를 찾았다. 972년 완공된 이곳은 104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이로 내 최고(最古) 모스크다. 모스크 상부에서 카이로 도심은 물론이고 나일강, 기자의 피라미드까지 볼 수 있어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2013년 이곳에는 이슬람권 지도자들이 대거 모였다. 그중에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발발 후 이집트를 방문한 최초의 이란 대통령이었다. 당시 아마디네자드는 알아즈하르 모스크를 이끄는 ‘이맘’(최고 종교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타이입과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타이입이 “수니파 국가에 대한 시아파의 영향력 확대를 거부한다”고 하자 아마디네자드 또한 발끈했다. 632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숨진 후 내내 대립 중인 두 종파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동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2016년 두 번째 단교 이후 5년 만에 다시 외교관계를 복원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88년 첫 번째 단교 이후 외교관계 복원과 재단교를 거친 두 나라는 왜 다시 손을 잡으려는 걸까.
오랜 서방의 제재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정상 국가로 공인받으려는 이란과,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보다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사우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국익을 위해서라면 고질적인 종파 갈등 또한 뒤로 제쳐둘 수 있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랜 분쟁 역사
종파, 정치체제, 민족, 언어가 완전히 다른 두 나라는 오랫동안 사실상 전쟁 상태나 다름없는 관계로 지냈다. 특히 절대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이란의 부상이 현 체제의 최대 위협이라는 뜻을 보여 왔다.
이란에서 혁명이 발발한 1979년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 집단 거주지 카티프에서 주민들이 정부의 시아파 탄압에 발발하며 봉기했다. 당시 당국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 최소 수백 명이 숨졌다. 사우디는 당시 시위대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1987년에도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 메카를 순례하던 시아파 신자와 이란인 관광객들이 왕정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약 400명이 숨졌고 이 중 275명이 이란인이었다. 이란은 격분했고 양국은 1988년 첫 번째 단교를 택한다.
1991년 외교관계를 복원한 양국은 2015년 예멘 내전 발발 후 또다시 대립했다. 사우디는 정부군을, 이란은 시아파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사실상 대리전을 벌였다. 2016년 사우디 정부는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카티프 지역의 시아파 주요 성직자를 처형했다. 이란인들은 수도 테헤란, 2대 도시 마슈하드에 있는 사우디 외교공관에 화염병을 던지며 반발했다. 이에 양국은 두 번째 단교를 택했다.
양국 ‘戰線’ 줄일 필요성 느껴
이렇듯 대립했던 두 나라가 손을 잡은 것은 양국 모두 전선(戰線)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2년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후 약 20년간 서방의 각종 제재를 받아온 이란은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국제사회에 정상 국가로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상당하다. 서방 세계에 ‘사이가 안 좋던 사우디와 다시 손을 잡았으니 우리를 이상한 나라로 보지 말고, 더 이상 중동 문제에도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는 의미다.
사우디 또한 마찬가지다. 사우디 왕실과 밀착했던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1월 출범 후 사사건건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날을 세워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영사관에서 살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연루됐다는 미 정보당국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9월 말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책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나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는 미국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한 것에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물러난 아프간을 무장단체 탈레반이 단시간 내에 장악하는 모습을 보며 미국에만 안보를 의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는 아프간 사태가 중동의 미국 파트너들에게 일종의 신호를 줬다며 “그들은 여전히 미국과 함께하고 있지만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두 나라의 화해 모드에는 이라크의 역할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집권 전만 해도 이라크는 이란, 사우디에 맞먹는 중동 강국이었다. 이라크는 지리적으로 이란과 사우디의 중간에 있으며 시아파(65%), 수니파(35%)로 나뉘어 한 종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이라크가 자국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리아 내전 등 중동정세 영향
두 나라의 화해 분위기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예멘이다. 알자지라는 예멘 내전으로 3월 말까지 민간인 1만2000명을 포함해 총 14만 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정부군과 후티 반군은 천연가스 생산 거점인 마리브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최근에도 매주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의 재수교로 이런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싹튼다. 사우디 측은 최근 후티 반군에 대한 이란의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이것이 이뤄지면 사우디 또한 예멘에 대한 개입을 줄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011년부터 내전 상태인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이란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오래전부터 물밑에서 지원해 왔다. 반군을 향해 생화학 무기까지 사용하는 반인도적인 행태로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았던 그가 아직까지 건재한 것 또한 이란, 러시아 등의 지원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사우디는 그간 아사드 대통령과 거리를 둬 왔지만 그가 5월 4선에 성공하자 정보국 수장을 보내 축하하는 등 시리아와 수니파 국가의 관계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을지를 두고 우려의 시선도 제기된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지역센터장은 “이란 핵합의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이란이 사우디와의 외교관계를 다시 무너뜨리는 등 극단적인 외교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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