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쿠팡플레이 코미디프로인 SNL코리아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고 웃음을 터뜨렸다. 알다시피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배우 김부선이 출연했고 ‘아수라’엔 대장동을 연상시키는 소장동 개발 비리가 등장한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질문을 던진 진행자는 인턴기자 주현영. 요즘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인턴이다. 정치인 인터뷰 코너인 ‘주 기자가 간다’는 줄곧 화제였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에겐 “저에게 막말 또는 화내실 예정인지 먼저 여쭤보고 싶다”고 질문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교과서 같은 답변엔 “너무 좀 재미없다…”고 말끝을 흐리며 디스했다.
정치 논리를 떠나 “웃긴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 한편, “주 기자 언제 이렇게 성장했냐”는 감탄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주 기자는 SNL코리아의 한 콩트 속에서 어리바리한 20대 인턴기자 역을 사실적으로 소화해 유명해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어색한 발성으로 여유 있는 척하다 매번 기본적인 답변도 제대로 못 하며 급격히 무너졌는데, 그 연기가 요즘 젊은 세대 특징을 실감나게 재현했단 평을 받았다.
모르는 걸 물으면 “제가 정한 게 아니다 보니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들? 그런 사실의 관계? 일단 그런 게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둘러댔고, 그래도 수습이 안 되면 “나하고 안 맞는 것 같다”고 울먹이다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첫 등장 영상은 600만 회 조회됐고, 상황에 맞지 않게 즐겨 쓰는 “일단은 좋은 질문? 지적? 감사합니다”란 말은 유행어가 됐다. 어리바리 신입이란 점에선 ‘미생’의 장그래와 비슷했지만, 장그래는 한없이 선하고 진중하며 무엇보다 너무 잘생겼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졌다. 주 기자는 훨씬 리얼했다. 한때 여성과 사회 초년생을 무능력 프레임 안에 가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의욕은 있으되 밑천이 없어 헤맸던 기억, 있어 보이려 애쓸수록 없어 보였던 경험은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있다.
요즘 대중문화의 새로운 조류 중 하나는 이런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다. 특히 ‘찌질한’ 일상의 굴욕을 사실적으로 해부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쓴 장류진 작가도 스크럼(실리콘밸리식 스탠딩 회의)을 아침 조회로 전락시키는 스타트업 대표나 오너에게 찍혀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 등 정보기술(IT) 업계 세태를 밀착 묘사한 ‘판교 리얼리즘’으로 유명해졌다. 미화의 필터 없이 일상의 디테일을 그대로 살린 콘텐츠로부터 폭소와 공감, 위안을 얻는 이들이 많아졌단 뜻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블롬크비스트 같은 특종 기자도, 펭수 같은 어록 제조기도 아니건만, 덕분에 이 어리숙한 인턴기자는 대세가 됐다. 현실이 팍팍해선지 미숙하던 캐릭터의 성장이 주는 대리만족도 컸다. 이 후보 편을 마지막으로 1시즌은 끝났지만, 모처럼 괜찮은 정치풍자와 실시간 성장 스토리를 동시에 지켜보는 즐거움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