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대통령, 가족이라는 업(業)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5일 03시 00분


딸 외국 이주·靑 거주, 아들 세금 지원
자신에 관대한 文, 公私 구분 무너져
가족 문제 引火性, 李보다 尹이 악성
대통령 자리·가족 행복 兩立 어려워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1년 가까이 청와대 관저에 거주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첫 느낌은 부끄러움이었다. 도대체 나를 비롯한 한국의 기자들은 그 1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건가. 국가 최고의 공인(公人)이자 권력자의 딸이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 거주했다는데 권력 감시자인 언론이 몰랐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 만에 하나, 아는 언론인이 있었는데 보도를 안 했다면 직무유기다.

사실 문 대통령의 딸 문제는 언론으로서도 ‘아픈 손가락’이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가족이 취임 1년여 만에 태국으로 이주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음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규명하고 보도하지 못했다. 과거 같으면 주요 언론들이 현지 취재라도 보냈을 법하건만, 취임 초반 대통령의 서슬 퍼런 권력을 의식해서든, 극성 문빠들의 공격이 부담스러워서든, 둘 다이든 간에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진실, 특히 권력 주변의 진실이 그대로 묻히는 법은 거의 없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가족을 보호한다고 쳐올린 높은 장막이 퇴임 후에는 대통령과 가족에게 되레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은 ‘잊혀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지금쯤은 본인도 잘 알지 않을까.

그래도 청와대나 대통령 측근이란 사람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적절한 사항은 없다”고 해명하거나 “딸이 친정에 와 있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했다면 본란(本欄)에서까지 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청와대 관저는 친정이 아니다. 그것이 이 나라 최고 권력자와 그 가족이 짊어져야 할 업(業)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당하는 비운(悲運)을 맛봤다. 그래도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주화 거인들이 보여준 최소한의 선공후사(先公後私)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도 가족의 금품수수에 대한 공적 수치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부터 공사 구분이 흔들려 그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종종 ‘패밀리 비즈니스’로 흘렀다. 대통령의 가족이었으나 자신은 가족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가족인 줄 알았던 최순실(본명 최서원) 앞에서 공사 구분이 무너졌다.

반대 진영에 담을 높이 쌓은 문 대통령. 자기 진영엔 늘 따뜻하고,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그러니 공사 구분도 무너지기 일쑤.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대통령과 울산시장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이제야 재판이 시작됐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대통령 아들이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의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강원 양구군,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지원 단체도 다양하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발끈하는 아들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인 대통령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자식은 맘대로 안 된다지만, 적어도 자신이 최고 권력자로 재임하는 동안이라도 지원금을 안 받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염치이자 경우다. 아무리 예술가라도 현직 대통령 아들의 세금 지원은 퇴임 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적 대통령제 풍토에서 가족 문제는 참으로 민감하고 미묘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대통령 가족이라고 끝까지 봐주고 넘어가는 일은 없다는 거다. 현재로선 대통령 자리에 가까이 가 있는 여야의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가족 문제 또한 남다르다. 단, 미래에 터질 문제의 인화성(引火性)으로 볼 때 윤석열의 가족 문제가 더 악성이다.

유력 대선 후보의 장모가 선거 전에 구속된 건 한국 정치사에 희한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도 윤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지 않은 건 그만큼 보수 유권자의 정권교체 열망이 컸던 터. 그런 보수 일각에서도 ‘대통령 윤석열은 봐도, 영부인 김건희는 못 본다’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 문제에 대한 윤 후보의 대응과 부인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역대 대통령의 가족사가 보여주듯, 대통령 자리와 가족의 행복은 양립(兩立)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는 자와 그 가족의 업(業)이다.

#박제균칼럼#대통령#국가최고 공인#권력자의 딸#가족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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