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때로 어두운 판타지를 좇는다. 인간의 그늘진 면모를 불꽃처럼 포착한 명작,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그런 면에서 아주 새로운 작품이었다. 원래 교향곡은 사회의 비전을 담아내는 장르였다. 몰라보게 발전된 관현악의 표현력으로 인해 복잡한 내용까지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면서 관현악 음악은 이제 고전적 질서를 넘어서 문학적 판타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베토벤의 6번 ‘전원’ 교향곡은 이러한 표제 교향곡의 선구적인 작품이었다. 프랑스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전원’의 5악장 구성을 모델로 삼되, 불행한 예술가 청년의 자기 파괴적 몽상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 같은 작업은 ‘전원’보다 더 수준 높은 문학적 접근을 요하는 것이었다. ‘전원’이 하루 사이에 겪는 자연의 경험이라는 보편적인 공감에 기대는 작품인 데 반해 ‘환상 교향곡’은 예술가 개인의 특수한 체험(혹은 상상)에 대한 음악적 서술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1악장 “꿈. 정열”에서는 한 젊은 음악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완전한 여인을 꿈속에서 만난다. 그런데 이 여인의 모습은 그에게 마치 독약과도 같다. 그녀에게 사로잡힌 그는 열정과 우울 사이를 오간다. 베를리오즈는 그 여인의 이미지를 ‘고정악상’에 담았다. 2악장 무도회에서도 왈츠풍 춤곡이 그녀의 이미지를 만나 이리저리 뒤틀린다. 이 무도회의 마지막은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구두’의 카렌의 춤을 연상시키듯이 걷잡을 수 없는 격정으로 폭발한다. 3악장 들녘의 장면에서는 양치기 둘이 피리를 불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비애감과 어렴풋한 희망 속으로 다시 그녀의 이미지가 틈입한다. 다시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소리. 하지만 처음과 달리 이제 응답해야 할 다른 하나의 피리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 고독과 불안만 남는다.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은 무시무시한 꿈 이야기다. 괴로워하다 못해 주인공은 자살하려고 음독했다가 죽지 못하고 꿈을 꾼다. 그가 그녀를 죽이고 사형당하는 꿈이다. 장엄한 관악이 왕의 행차를 알리고 그는 시끄러운 훤화를 뒤로한 채 단두대로 나아간다. 마지막 5악장 “마녀들의 밤의 향연과 꿈”은 죽음의 무도다. 그의 상상 속에서 재현되는 죽음과 사후 망령들의 무도회는 그러나 실제 죽음이라기보다는 쓰디쓴 사랑의 죽음과 그 종말을 뜻한다.
베를리오즈는 이 곡을 통해 질서와 합리성, 계몽의 장르인 교향곡을 자유와 판타지, 혁명의 장르로 변모시켰다. 예술은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억압되어 있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어두움에 표현과 형식을 부여하여 해방시킨다. 놀랍게도 예술의 옷을 입을 때 우리 내면의 어두움은 무해하게 되고 심지어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예술이 주는 또 하나의 신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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