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이 예술이 된다[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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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사나다 아쓰시 감독의 ‘하와이언 레시피’

사진 출처 영화사 ‘진진’
사진 출처 영화사 ‘진진’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하와이섬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호노카아. 일본에서 여행 온 대학생 레오가 태평양을 바라보는 소박한 마을에 반해 휴학을 하고 눌러앉는다. 사탕수수 공장이 있던 곳이라 오래전 일본에서 건너온 교포들, 특히 노인들이 많아 소심하고 숫기 없는 레오에겐 더 없이 편하다.

동네 극장에서 일하며 매일 같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같은 길을 오가는 레오. 딱히 불만은 없다.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될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레오의 일상이 토박이들의 일상에 녹아든다. 그에게 매일 저녁밥을 지어주는 앞집 할머니, 그에게 사춘기 소년 같은 짓궂은 농을 하는 옆집 할아버지 등등 모두가 레오 덕분에 일상이 활기차졌지만 레오가 자신감을 갖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키우길 바란다.

노인들이 많은 동네는 안심이 된다. 낯선 곳이라도 골목에 할머니들이 나와 계시면 마음이 놓인다. 이런 곳이라면 믿을 수 있다. 나이 든 사람과 낡은 물건이 주는 편안함은 세월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 값을 매기기 어렵다. 오래된 병원의 나이 드신 선생님. 비록 최신형 검사 기계가 없더라도 경험 많은 선생님의 말씀은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인간의 몸이 완벽할 순 없기에, 정교한 기계로 몰라도 될 것까지 밝혀내 걱정하고 싶진 않다. 약간의 여유는 건강한 삶의 필수요소 아닐까. 마을의 노인들은 레오에게 여백이 많은 일상을 선사하지만 이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레오를 훌쩍 성장시킨다.

오래전,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해질 녘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저녁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창밖에 예쁜 화분을 놓고, 대문 밖에 은은한 외등을 달아 오가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이들도, 맛있는 밥을 파는 식당들도 내게는 커다란 행복이다. 한 편의 예술작품이 주는 무게와 맞먹는다. 삶에 지칠 때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에 등불이 켜지는 것 같다. 따뜻한 온기가 퍼져 나간다. 볼품없다고 여긴 당신의 일상이, 수십 년간 쌓인 당신의 시간과 수고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말했다. “예술가란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기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바로 당신들이다.

레오는 호노카아 마을을 두 눈에 담으려는 듯 뒷걸음질로 마을을 떠난다. 그러다 마을을 등지고, 앞을 향해 걷는다. 자기 길을 찾아가듯이 힘차게. 그는 호노카아를 두 눈이 아니라 마음에 담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평생 버틸 수 있는 큰 힘을 얻어간다.

#일상#예술#하와이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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