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10년 전, 바이든은 시진핑을 잘못 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8일 03시 00분


‘오랜 벗’이던 美中 정상의 먹통 대화
국제정치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타 공인 ‘외교 대통령’이다. 특히 세계 지도자들과의 넓고 깊은 개인적 친분은 그의 자산이다. 바이든의 옛 측근은 말한다. “카자흐스탄이든 바레인이든 어디가 됐든 그를 떨어뜨려 놓아 보라. 거기서 그는 30년 전 만났던 누군가를 발견할 것이다.” 전직 상원의원도 거든다. “의회를 방문한 외국 손님에게 ‘여기는 스미스 의원, 여기는 존스 의원’ 소개하다가도 바이든 차례에선 늘 손님이 먼저 ‘안녕, 조’라고 인사한다.”

‘모든 정치는 개인적(personal)’이라는 게 바이든의 지론이다. 외교 현장에서도 그 얘기를 꺼내며 “모든 게 궁극적으로 신뢰에 기초하고 신뢰는 솔직한 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면 상대의 의도가 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곤 했다. 박력도 결기도 없어 보이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경청, 타협의 리더십이 오늘의 바이든을 만들었다.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도 어떤 얘기든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관계를 맺었다. 2011년 베이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함께 국수도 먹고 지방 여행도 했다. 당시 시진핑은 중동의 독재정권이 줄줄이 무너지던 ‘아랍의 봄’ 사태를 무척 궁금하게 여기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책은 인민과의 접촉을 잃고 자만에 빠져 고립됐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그런 길을 피해야 한다.”

그런 사이였기에 바이든은 그제 자신을 ‘오랜 친구(老朋友)’라 부르는 시진핑과의 화상회담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격의 없는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법. 게다가 시진핑은 10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바이든은 둘 사이에 대해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만 오랜 친구는 아니다.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다”라고 밝힌 바 있다.

미중 관계를 되돌아보면 바이든과 시진핑의 친분은 예외적이었던 한 시절의 얘기일 수 있다. 1979년 수교 이래 미중 사이는 늘 긴장 상태였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 중국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대통령선거 때면 늘 ‘중국 때리기’가 유행했다. 대만에 무기 수출을 주장한 로널드 레이건, ‘베이징의 도살자’라고 비난한 빌 클린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등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 뒤에야 비판 수위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중국에 각을 세우지 않고 선거를 치른 것은 버락 오바마, 바이든 콤비의 2008년 대선이 유일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선 중국을 껴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이든은 러시아 지도자에겐 “당신 눈에선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바이든에게 시진핑은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

시진핑의 ‘중국몽’은 이미 그때 시작됐다. 슈퍼파워를 쩔쩔매게 만든 금융위기를 시진핑은 미국 쇠퇴의 서막이라고 진단했다.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던 시절을 끝내고 중국이 세계에 우뚝 설 시대가 왔다고 봤다. 주석에 오르자마자 아시아의 지역패권을 추구했고, 이제 공산당 100년 역사까지 다시 쓰며 글로벌 파워로 질주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 사적인 친분이 국가 간 힘의 관계, 질서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다. 물론 영원한 적(敵)도 없다. 하지만 작년 대선 때 ‘베이징 바이든’ ‘조진핑’이라 공격받던 바이든에겐 당장 국내 정치도 힘겨운 상황이다. 그의 인맥외교가 미중 대결이 충돌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로나마 작동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바이든#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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