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산 첨단 장비를 도입해 중국 장쑤성 우시 공장을 개선하려는 SK하이닉스의 계획이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분쟁에서 다음 차례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미중 경제패권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세계 D램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7%로 삼성전자(44%)에 이은 2위다.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으며 추격하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 장비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우시 공장은 이 회사 D램 제품 절반이 생산되는 시설이어서 투자 제동이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미국 및 동맹국 기술이 쓰인 첨단 반도체 장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중국 군사력 강화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제조업 최강국에 올라서겠다는 중국을 견제하는 게 주목적이다. 지난주 중국 현지 실리콘웨이퍼 생산량을 늘리려던 자국 반도체업체 인텔의 계획까지 포기시켰을 정도로 미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문제는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의 40%를 사 가는 최대 고객이란 점이다. 홍콩을 통한 우회 수출을 합하면 비중이 60%가 넘는다. 미국의 반대로 중국 공장에 시설투자를 제대로 못 하면 중국은 미국 대신 애먼 한국 기업을 표적 삼아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사드 사태’ 때 그랬듯 전혀 다른 분야의 한국 기업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할 길은 어떤 갈등이 불거져도 중국 기업들이 한국산 반도체를 사지 않을 수 없도록 기술, 품질 초격차를 더 벌리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SK하이닉스의 투자가 예정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주민 설득, 인허가가 지연돼 당초 계획보다 착공이 1년 이상 늦어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더 과감한 지원책과 규제완화 방안을 담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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