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충현]추가 세수 당청엔 알리고 국민들에겐 쉬쉬한 기재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9일 03시 00분


송충현 경제부 기자
송충현 경제부 기자
“올해 초과 세수는 누차 이야기드린 것처럼 10조 원대입니다. 10조 원대가 레인지(범위)가 넓긴 하지만….”

1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초과 세수가 예상치를 웃돈 19조 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근거를 물었더니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 어떤 가정과 근거로 이야기했는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산한 수치는 10조 원대 정도”라고 잡아뗐다.

기재부는 이날 올해 1∼9월 세입과 지출을 보여주는 ‘재정동향’ 자료를 발표하며 “(10조 원대 초과 세수는) 기재부만의 전망이 아니고 국회예산정책처 등의 전망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기자들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하지만 기재부의 이 같은 설명의 유효기간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19조 원’의 출처에 대해 “기재부가 직접 알려준 숫자”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전날 직접 여당을 찾아 설명해준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더니 기재부는 오후 늦게 예정에 없던 자료를 내고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에게, 15일에는 여당에 19조 원 전망치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국회의원이 초과 세수 수정치를 공개할 때까지 입을 다문 이유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일은 소극적이지만 조직에 대한 비판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여당이 의도적 과소 추계는 국정조사 대상이라고 으름장을 놓자 기재부는 보도자료에서 “의도적인 과소 추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이미 청와대와 여당에 보고를 마친 사안을 “10조 원대는 레인지가 넓다”는 ‘말장난’으로 국민들에게 숨기려 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유류세,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소비 시점에 영향을 미치거나 가수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책은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세금은 기재부의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낸 돈이다. 국민들은 세금이 얼마나 걷히고,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초과 세수가 있다면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를 보기보단 세금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먼저 솔직히 알리는 게 공복의 도리다.

정부는 “세수 추계를 잘못한 건 맞지만 경제 위기 뒤 세수 추계는 늘 어려움이 많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여러 변수를 파악해 경제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는 일 역시 정부의 능력이다. 물가 예측도, 세수 추계도, 요소수 등 물자 관리 전망도 모두 빗나갔다면 무능하다는 비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당초 전망보다 더 걷힌 세금의 주인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어도 포기하지 않고 가게 문을 열었던 자영업자와 마스크를 쓴 채 대중교통에 실려 회사를 오가며 밤낮으로 일한 회사원 등 국민들이라는 걸 공무원들은 명심해야 한다. 세금을 주머닛돈처럼 여기는 국회의원도,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초과 세수#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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