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숙소로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에는 건축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집을 짓거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자신의 건축 철학과 스타일을 알리는 건축가가 많은데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산자락 바로 아래 둥지를 튼 땅에는 총 4채의 캐빈이 띄엄띄엄 자리한다. 오두막 크기는 약 19m²(6평). 물리적으로는 작은 크기이나 넓은 창으로 숲이 보이고 모든 가구를 맞춤하듯 짜 넣어 포근하고 아늑했다. 외장재는 아연강골판. 표면 전체에 골이 파여 있는 은빛 외장재는 밤에도 빛의 덩어리처럼 환하게 빛났다. 원래 물이 많은 지대라 땅 밑으로는 120cm 높이의 배수 배관을 설치했다고. 최신 공학과 마감재를 선택해 직접 건물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립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이야기에 유독 흠뻑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객실 안에 있는 최봉국 건축가의 책이 또 한번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딸, 아내와 함께 러시아와 유럽 일대를 10개월간 여행하고 그 기록을 엮어 펴낸 책 ‘사월’. 책 안에는 러시아에서의 43일을 포함해 아이슬란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핀란드에서 보낸 시간이 담겨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바다에서는 밍크고래가 헤엄치고 핀란드의 숲과 호수는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이 긴 여행을 한국에서 몰던 자동차로 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수준급의 사진도 사진이지만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 것은 그의 담담한 문장들이었다. 딸에게 해님 같고 바람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말한다. “이동하는 것은 우리였지만 마치 가만히 있는 우리의 공간으로 나라와 도시들이 지나가는 듯했다.” 여러 풍경과 삶, 아름다움과 고민을 담을 수 있도록 큰 그릇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 시대로 진입하면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것이 ‘로컬’이다. 순기능이 많지만 저 먼 세상만이 보여주고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여행은 외로움과 고달픔, 쓸쓸함과 함께하기에 값진 것 같다. 마음에 오랫동안 바람이 불어 여행을 결심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바람이 멈추면 겨울의 들판처럼 담담한 상태로 내일을 기약하게 된다. 나부끼지 않는, 평온하고 담대한 마음은 세계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리라. 대부분의 사람이 뇌의 10%만 사용하고 죽는다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 역시 한정된 곳에만 머물다 가는 건 아닐지. 더 먼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불현듯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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