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대선을 치렀지만 요즘은 정치 이야기가 유독 껄끄럽다. “이재명이, 혹은 윤석열이 되면 나라 망하는 것 아니냐” “저쪽이 되면 모두 교도소 가는 것 아니냐” 식의 듣기 불편한 말만 오간다. “정치 얘기는 그만하자”고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이다.
‘네 편’ ‘내 편’은 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특히 대선은 갈등 증폭기라고 할 만하다. 정치는 집단의 혐오와 두려움을 적극 활용한다. 영·호남을 대립시키는 지역 갈등이 대표적이었다. 편 가르기만큼 우리 편을 쉽게 결집시키는 수단이 없다. 감정에 이해관계까지 얽히면 더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아만 남는다. 선거가 반복되면서 갈등의 대척점은 지역에서 진영, 세대, 빈부 등으로 확대됐다. 갈등의 다양화가 주요 선거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선에선 청년의 남녀 문제, 젠더 갈등까지 소환됐다. 이미 20대 남성과 여성만 두고 보면 ‘이성 혐오의 시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엔 서로를 혐오하는 표현들이 넘쳐난다. 반대 성(性)에 대한 ‘극혐’은 일상 속에서도 번지고 있다. 경제 불황, 취업난 등으로 젊은 세대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반대 성에 의해 차별받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주자들은 이 같은 불만을 파고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정당,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면 이재명 후보를 기쁜 마음으로 찍겠다”는 내용의 반페미니즘 글을 민주당 선대위 참석자들과 공유하고 이를 읽어보라고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에 등을 돌렸다는 ‘이대남(20대 남성)’의 인식을 알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젠더 갈등에 편승해 반페미니즘으로 20대 남성 표심을 얻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양성 평등 공약으로 제시한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또한 반페미니즘 정책이라는 관측 속에 여성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두 후보가 동시에 내놓은 여성가족부 개편 공약도 비슷하다. 이 후보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건 옳지 않다”,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고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
대장동 특혜 사건을 두고 서로가 몸통이라며 듣기에 섬뜩한 말까지 서슴지 않는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젠더 갈등까지 가차 없이 선거 전략에 넣고 적대감을 키운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말했던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과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실패했다. 갈등의 정치는 일상이 됐다. 두 후보 모두 문재인 정부 때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내년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더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대선은 미래의 선택’이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극심한 흑백 인종 갈등 속에서 대선을 치렀지만 ‘변화(Change)’와 함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고 계속해서 외쳤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대선까지 100일 남짓 남았다. 불안과 증오가 아닌 미래와 희망을 논의하는 정상적인 대선 궤도로 돌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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