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대 기준으로 강남권은 5억 원, 그 외 지역은 3억 원 정도에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지난주 취임함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반값 아파트 실험이 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부 때 강남·서초구에 2개 단지를 분양한 후 10여 년 만의 반값 아파트 부활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유사한 공약을 내놓고 있어 현실화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반값 아파트 공약’을 되살렸다.
서울시 반값 아파트는 SH 등 공공이 땅을 보유하고 건물 소유권만 입주자에게 넘기는 ‘토지 임대부 주택’이다. 이 후보가 임기 중 100만 채를 짓겠다는 ‘기본주택’ 중 상당수, 윤 후보가 역세권에 20만 채를 공급한다는 ‘역세권 첫 집’과 같은 방식이다. 아파트 값의 60%가 넘는 택지비를 빼고 분양할 경우 3억∼5억 원의 분양가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택지 확보가 큰 문제다. 수익성이 낮아 공공 부지가 아니면 추진조차 하기 어렵다. 10년 전 반값 아파트를 그린벨트를 푼 땅에 지은 것도 그래서다. 서울시가 지목한 서울의료원, 세텍(SETEC), 수서역 공영주차장 터 주변 주민들은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반값 아파트 대신 공공·상업시설이 들어와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분양가 외에 매달 토지분 임대료를 수십만 원 내야 하기 때문에 ‘반전세와 다른 게 뭐냐’는 부정적 반응이 커질 수도 있다. 택지비에 금리를 반영해 정하는 임대료는 금리 인상기에 더 높아진다. 이명박 정부 때 2억 원(84m²)에 분양한 반값 아파트 값이 지금은 6, 7배로 뛰어 입주자들이 이득을 봤지만 올해 관련법이 바뀌면서 앞으로 지어지는 반값 아파트는 시세보다 싼값에 공공에 되팔아야 한다. 반대로 인기를 높이려고 민간 거래를 허용했다간 ‘로또 아파트 열풍’이 불어 부동산 시장이 크게 교란될 것이다.
합리적 가격의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선 다양한 실험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들이 원하는 건 ‘온전한 내 집’이지 ‘반쪽 아파트’가 아니란 점을 대선후보들과 서울시는 깨달아야 한다. 도심 고밀개발 허용, 민간 재건축·재개발의 활성화 등 규제 완화보다 빨리 수요자들이 살고 싶은 집을 늘리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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