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첫눈이 오듯 연말이 되면 서점 매대에 트렌드 코리아가 나타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2’는 올해도 당연하다는 듯 연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시리즈는 2008년 처음 출간됐으니 벌써 14년째 장수하는 스테디셀러다.
이 책 옆에는 다양한 아류(?)의 2022년 트렌드 책들이 놓여 있다. 부동산, MZ세대, 블록체인, 뉴미디어,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트렌드 뒷담화’라는 제목의 책까지 보다 보면 정말 다양한 트렌드 책이 나오는구나 싶다.
많이 나온다면 찾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트렌드 책은 보통 10월부터 출간된다. 회사들이 다음 해 사업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시기다. 전략 보고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트렌드 책을 펼쳐 보는 회사원들이 많다. 20대 회사원 A는 실제로 2022년 전략 발표 자료를 만들며 트렌드 리포트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고 했다. “거기 나온 말이라고 하면 임원들이 설득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트렌드는 누가 정리해 주기 전엔 생활 속에서 어렴풋하게만 느껴진다. 트렌드 생성 초기에는 명확한 숫자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명 자체가 힘들다. “요즘 이게 유행”이라 했을 때 “나는 본 적 없는데”라는 답이 돌아오면 할 말이 없다. 트렌드 책은 이럴 때 유용한 근거다. 연말에는 트렌드 책 관련 강연이나 기사도 많아지니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에게 간단하게 보여주기도 좋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에 참고하려 트렌드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 시류에 맞게 사는지 궁금해 참고하는 것이다. 트렌드 책에는 ‘A는 B다’ ‘앞으로 A를 B라 하겠다’ ‘…할 것이다’ ‘…하라’ 같은 문장이 많다. 단언하는 선언문이 많으니 ‘정말 그런가 봐’ 하며 책의 내용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트렌드 책 후기 중에는 공감되는 문구를 찾은 후 “내가 틀리지 않아 다행”이라며 기뻐하는 글이 많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책이 나오니까 연말 의식이나 습관처럼 트렌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떡을 안 좋아해도 새해가 오면 떡국 한 그릇씩 먹듯, 평소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트렌드 책은 사는 친구도 있다. 생각해 보면 새해 연도가 표지에 크게 쓰인 책이니 연말 연초에 이만큼 읽기 좋은 책도 없다.
마케팅 일을 한다면 트렌드 책의 신조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근 2년간은 ‘판플레이’라는 단어가 업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장소를 뜻하는 ‘판’과 놀다라는 의미의 ‘플레이(Play)’를 합친 MZ세대의 참여형 놀이문화라고 한다. 역시 트렌드 책에 나왔던 말이다. 나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이 말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었을 정도다.
올해 트렌드 책들이 제안한 신조어들 중에서 앞으로 어떤 단어를 자주 듣게 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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