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사의 상흔…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4일 00시 00분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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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채 한 달도 안 돼서다. 박정희 정권 몰락의 정국 혼란을 이용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던 신군부의 1, 2인자가 연달아 눈을 감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족을 통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바란다”는 뜻을 남겼지만, 전 전 대통령은 끝까지 사죄하거나 참회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와 광주학살, 강압통치로 우리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철권통치자였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짓밟고 만들어낸 신군부의 군정 연장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또다시 가로막았다. 대법원이 늦게나마 이들을 군사반란 및 내란죄로 단죄함으로써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는 준엄한 교훈을 역사에 새겼지만, 신군부의 권력 찬탈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는 10년 이상 정체 내지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시절은 공포정치, 강권통치가 횡행했던 한국 정치의 암흑기였다.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의 하나로 설치한 삼청교육대는 인권 탄압의 대명사였다.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를 강제로 통폐합하는 반민주적 조치도 그때 이뤄졌다. 1963년 개국해 방송 문화를 선도했던 동아방송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회 출신 정치군인들과 추종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도 장악했다.

그의 통치 시기는 광주학살이라는 태생적 원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광주학살 진상 규명 및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숱한 대학생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던 실로 어두운 시기였다. 정권 말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민주화 열망이 증폭되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결이었다.

경제 분야에선 비교적 나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집권 초 어려웠던 경제 여건 속에서 먼저 물가를 안정시키고 뒤이어 경제성장도 함께 이뤄냈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중화학공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꿨다. 집권 후반기엔 때마침 세계적인 3저 호황(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이 겹쳤다. 당시 고도성장엔 이런 외부 환경의 영향도 컸다.

그 과정에서 자라난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는 어두운 그림자였다. 대통령 재임 시절 재벌 총수들에게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현재까지도 956억 원을 미납한 상태다. 그래놓고 왕년의 부하들과 골프를 즐기고 고급 호텔에 숙박하는 등 각종 구설에 오르면서도 예금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똑같은 뇌물 혐의로 2629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은 늦게나마 완납했다.

권력의 공포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이를 통해 최고 권력을 만끽한 통치자였지만 퇴임 후 5공 청문회, 백담사 유배, 내란 수괴 구속, 무기징역 확정 판결 등 법적 정치적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사면으로 그의 실제 수감 기간은 약 2년에 그쳤지만 ‘학살자’ 낙인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남긴 정치적 공적으로 거론되는 7년 단임 약속 이행은 한국 정치사에서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다. 퇴임 이후 막후 실력자로 남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했고, 자신의 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동료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이었다. 다만 당시까지는 전례가 없는 한국 정치사의 첫 평화적 정권 이양은 마성과도 같은 권력욕을 자제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는 마지막 유언 한마디 없이 떠났다. 유족 측은 “회고록 3권에 남긴 내용이 사실상 고인의 유언”이라고 했다. 그의 회고록은 반성 없는 자기변호로 가득 차 있다. 12·12를 ‘골리앗과 싸운 다윗의 전쟁’에 비유하며 반란의 진압이었을 뿐이라고 했고, 5·18에 대해서도 ‘신화처럼 굳어진 편견과 오해’라며 억울해했다. 2003년 한 방송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그러니까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고 했던 전 전 대통령은 한 차례도 5·18 유혈 진압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고 썼다. ‘시대의 악역’을 맡았을 뿐이란 항변이다. 그는 떠났지만 역사는 계속 물을 것이다. 그의 시기가 진정 불가피했느냐고, 자신이 벌인 일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한국 현대사에 독재의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사과를 통해 국민과 역사에 참회할 마지막 기회마저 버리고 그는 떠났다.
#전두환#별세#현대사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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