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작에 능했던 신군부처럼
독재타도 투쟁하다 닮은 86그룹
선거에 승복 않는 ‘주사파 민주주의’
전두환 사망과 함께 악순환 끊어야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뜻밖의 발언을 남겼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달라면서 이렇게 말한 거다. “우리 정부만이 이룬 성취가 아닙니다. 역대 모든 정부의 성취들이 모인 것이고 결국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국민이 노력해서 이룬 성취입니다.”
‘제3기 민주정부’를 자처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만 1, 2기 민주정부로 인정했던 문 정권이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역대 모든 정부’에는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은 물론, 23일 세상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도 포함된다. 전두환 집권기(1980∼1988년)는 연평균 9%의 고도성장기였다. 그때는 대학생이 많지도 않았지만 1980년대 학번, 60년대생은 데모만 해도 졸업 후 취업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만큼 일자리가 넘쳐났다.
전두환이 12·12쿠데타와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으로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남긴 건 분명하다. 그러나 12·12 직후만 해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전두환 같은 정치장교들이 정치공작에 능숙한 집단임을 몰랐다고 오인환은 최근 저서 ‘김영삼 재평가’에서 지적했다. 김영삼은 유신과 함께 군부 시대도 끝났다고 속단했고, 군 출신이 역사를 망쳤는데 또 나올 수 있겠느냐며 ‘민주화 대세론’을 믿었다고 했다.
당시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쳤던 86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현 집권세력은 신군부세력이 낳은 사생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을 뿐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도, 실천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사파 전대협 출신들이 상당수인 청와대비서실은 ‘청와대 정부’로 문 정권 내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게 사실이다.
젊은 날의 그들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군사독재를 타도할 수만 있다면, 마르크스-레닌 아니라 김일성과도 손잡겠다며 더러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을 것이다. 이들이 총학생회 시절부터 정치공작에 능숙한 집단임을 국민은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2018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한 예다. 문 대통령의 30년 절친 송철호 시장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비서실은 과거 전대협 때처럼 총출동해 아무렇지도 않게 선거 공약을 만들어주었던 모양이다. 조국은 민정수석 시절 대통령발 개헌안을 국무회의 심의도 안 거친 채 들고나와 감히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이들이 검찰개혁,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삼권분립을 뒤흔든 것이 전두환도 울고 갈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다.
문 정권이 조문조차 거부하는 철권통치자 전두환도 참모진을 그렇게 만들진 않았다.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일임하면서도 비서는 어디까지나 지휘관의 참모인 만큼 장관의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게 단속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
민주주의의 개념도 ‘86세대의 민주주의’는 달랐다. 주사파 이론가 민경우는 “선거에 승복해야 한다는 개념이 주사파에는 없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1987년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 선거를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타도 투쟁에 나섰다.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패하자 무력으로 뒤엎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알 것 같지 않은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소고기 광우병 시위든, 민노총 시위든, 무슨 구실이든 붙여 정권 타도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리하면 ‘조작’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들만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옳고 그름 자체가 흔들리는 위험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내년 대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두환의 죽음과 함께 불행했던 한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역대 모든 정부의 공(功)은 끌어안고 과(過)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가 되었다. 악마를 타도하겠다고 악마를 닮아서는 안 될 일이다.
‘조국흑서’ 저자인 변호사 권경애는 “광주학살 원흉 감옥 보내야 한다고 데모하고… 의원 배지 달고… 그 귀착점이 이재명이냐”고 취중진담을 페이스북에 썼다 지우기도 했다. 86 집권세력이 변하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이 먼저 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성숙한 자유와 권리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사는 듯 살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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