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교육부의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이 그제 공개됐다.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국어 수학 영어 사회 수업 시간을 각 141시간에서 106시간, 과학을 170시간에서 106.7시간으로 대폭 줄이고 다양한 선택과목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구현’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우선 고교 3년간 총 수업 시간이 2890시간에서 2720시간으로 줄어든다. 학습량이 줄면 올해 수능에서도 확인됐듯이 가뜩이나 심각한 학력저하 현상이 심화할 우려가 크다. 현 정부의 학력 경시 풍조에 코로나로 인한 학습 결손까지 더해져 지난해 중2, 고2생들 가운데 국어 수학 영어 전 과목에서 기초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 2016년에 비해 1.5∼3배로 늘었다. 디지털 소양을 함양한다면서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의 기초가 되는 수학과 과학 수업 시간을 줄인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교 교육이 부실해지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지난해 고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38만8000원까지 늘어난 상태다. 월 소득 8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200만 원 미만 가구의 5.1배에 이를 정도로 소득 수준별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새 교육과정 도입으로 사교육 수요가 늘어나면 가정 형편에 따른 학력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도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제도를 시범 운영 중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한 과목에만 몰려들자 성적순으로 수강 인원을 제한하고, 교사가 부족해 한문 교사가 사회를 가르치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내년 하반기 새 교육과정을 확정하기 전에 교육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보완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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