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어제 기준금리를 1%로 인상하면서 작년 3월 이후 20개월간 이어지던 ‘0%대 기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한은이 내년에 한두 차례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제로(0%)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도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가계와 기업의 부채도 위험 수위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9년 9개월 만에 3%대로 상승하면서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크게 뛰어넘었다.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대출이 늘면서 9월 말 가계신용(가계대출+신용카드 사용액) 규모는 1844조9000억 원으로 작년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4.2%로 주요 37개국 중 1위다.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된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5대 은행 대출 규모도 1년 전보다 10%나 급증했다.
물가 급등을 억제하고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의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어제 이주열 한은 총재가 내년 초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집이나 주식을 사기 위해 더 이상 무리해 ‘영끌’ 대출을 받는 건 위험해졌다. 금리 6%에 육박하는 주택담보대출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구가 늘어나는 등 부채 충격이 임박했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한국의 가계는 연간 2조9000억 원의 이자 부담을 더 져야 한다. 과도한 빚을 진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우려되는 건 현재의 물가상승이 과잉 유동성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각국의 친환경 정책 전환, 미중 경제 갈등 등 해외의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올려도 물가는 계속 오르고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만 커질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까지 벽에 부딪힐 경우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은은 실물경기의 흐름을 세심히 살피면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 기업들이 받을 부채 충격에 대비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자제하면서 재정 여력을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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