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들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 사랑하지 않고 모여 살다가 죽을 때는 한 명도 눈물 흘리는 사람 없이 죽는다.” ―이탈리아 속담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예수고난회’라는 수도회에 들어갔다.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수도회 정신에 따라 단식과 금육, 절제하는 생활이 일상이던 곳이었다. 주말이면 여느 청년들처럼 나가 놀고도 싶고, 늦잠을 자고 소파에서 마음껏 TV를 보고 싶었지만 무엇도 허락된 게 없었다. 산속 수도원을 다녀간 사람들은 “천국이 따로 없다”고 했지만 어린 청년 시절 나는 힘들기만 했다.
나는 몇 년 후 수도원을 떠났는데 20여 년 만에 수도원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수도원 생활규칙을 정리한 ‘회헌’의 번역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라틴어판, 이탈리아어판, 영어판, 우리말 회헌을 비교하고 살피며, 나는 이렇게 살기 어려운 수도회를 어릴 때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결정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다.
“규율이 없는 곳에는 수도자도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도 공동체에는 세세한 규칙과 규율이 있다. 그런데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말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료 수사·수녀가 가장 큰 걸림돌이자 고통이 된다. 그러다가 누군가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모습을 비유한 속담까지 나온 것이다.
서로 같은 지향을 두고 모인 수도자의 삶도 이런데 오늘의 우리 모습은 어떤가? 이 전례 없는 사회 상황에서 우리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고 너그러움도 자비도 없이 지쳐간다. 서로 어둡고 무거워진 마음을 반반씩 나누어 바꿔서 지는 것은 어떤가? 결국 같은 무게일지라도, 그게 마음까지 나눈 거라면 무게의 체감은 달라질 것이다. 진정 마음으로 묶인 둘은 혼자보다 좋지 않을까? 사랑하면서 사는 일이 힘들면, 미워하며 사는 일은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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