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우리의 그리움이 향하는 곳이다. 그것은 자크 데리다에 따르면 “선조들이 묻혀 있는 땅” 혹은 “모든 여행과 모든 거리를 거기에서부터 가늠하는 부동의 장소”다. 낯선 땅에 살던 사람들이 죽을 때 고향에 묻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지난주에 제1회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작가 하 진은 고향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고향은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곳이다. 두고 떠나온 곳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다시 만드는 유동적인 것.
그의 삶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1989년 톈안먼 대학살의 실상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다가 망명을 택했다. 그리고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영어로 써서 전미도서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그를 배반자로 낙인찍고 몇십 년 동안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배반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무고한 젊은이들을 학살한 국가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보호해줘야 하는 “자식들을 잡아먹은 어미”였다. 그에게 중국이 고향이 아니게 된 이유다.
그러나 그의 심리적 현실은 다르다. 그는 미국이 집이라고 말하지만 중국으로 거듭 돌아간다. 중국인이나 중국인 이민자를 소설에 매번 등장시키는 것도 심리적, 은유적인 의미에서 보면 귀향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정체성이 이미 확립된 서른 살 무렵에 고향을 떠났기에 더욱 그러한지 모른다. 그의 말과 다르게 미국이 진짜 고향, 진짜 집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한국에 왔음에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그의 집이 있는 미국으로 쓸쓸히 돌아갔다. 하기야 지난 36년을 그렇게 살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고향에 가서 애도조차 할 수 없었다.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러한 실존이 그를 디아스포라 작가로 만들었다. 그가 쓴 시와 소설 주변에 상처가 아른거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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